퇴근길은 서점을 지난다 - 전남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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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0 10:31
저자 : 전남진
시집명 : 나는 궁금하다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문학동네
운이 나를 비껴갔다고 노을 등진 가로수가 말했다
한 번도 뜻대로 피어본 적이 없었다고
화분에 향기를 묶인 꽃, 잎을 흔들며 바람을 붙잡는다
퇴근길, 나는 나무에게 묻는다. 얼마 동안 거기서 쓸쓸했는가
뿌리를 털며 몸을 붙잡는 땅을 박차고 나와
처음 그 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질문은 항상 몸 속에 박혀 나오지 못했고
그때마다 때묻은 길들이 신발 밑을 지나갔다
서점으로 들어가는 오래된 습관에게 나무가 되물었다
넌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냐
진열대에 누워 있는 변명들을 나는 또 얼마나 많이 읽었던가
늦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구두처럼
자꾸만 누추해지려는 미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구실의 책을 읽었던가
한 권의 변명과
한 권의 위로와
한 권의 쓸쓸함
보다 만 책갈피를 접듯 오늘을 굽히며 나는 집으로 접힐 것이다
내일 반드시 펼쳐 볼 것처럼……
언제쯤 나는 저 서적들의 침묵처럼 고요하게 저항할 수 있을까.
한 번도 뜻대로 피어본 적이 없었다고
화분에 향기를 묶인 꽃, 잎을 흔들며 바람을 붙잡는다
퇴근길, 나는 나무에게 묻는다. 얼마 동안 거기서 쓸쓸했는가
뿌리를 털며 몸을 붙잡는 땅을 박차고 나와
처음 그 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질문은 항상 몸 속에 박혀 나오지 못했고
그때마다 때묻은 길들이 신발 밑을 지나갔다
서점으로 들어가는 오래된 습관에게 나무가 되물었다
넌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냐
진열대에 누워 있는 변명들을 나는 또 얼마나 많이 읽었던가
늦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구두처럼
자꾸만 누추해지려는 미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구실의 책을 읽었던가
한 권의 변명과
한 권의 위로와
한 권의 쓸쓸함
보다 만 책갈피를 접듯 오늘을 굽히며 나는 집으로 접힐 것이다
내일 반드시 펼쳐 볼 것처럼……
언제쯤 나는 저 서적들의 침묵처럼 고요하게 저항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