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poem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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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1 12:12
저자 : 정재윤
시집명 : 호박꽃 당신
출판(발표)연도 : 1999
출판사 : 행림출판사
변기
정재윤
나를 용서하오.
난 당신이 지저분한 여잔 줄로만 알았소.
당신이 화장실을 오래 사용한 뒤
내가 들어가 보면
변기 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당신의 흔적.
건망증일까?
치매일까?
아냐, 이건
당신의 깔끔하지 못한 성격일꺼야 하고
단정하고 말았소.
지저분한 여자!!
그러나,
당신이 당신으 흔적들을 그대로 남기는 건
수돗세를 절약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소.
잠시나마 당신을 지저분하게 생각한 나를
용서하시오.
또, 아침이면
언제나 나보다 먼저 변기를 차지하는 당신을
난 무지무지 원망했었소.
특히 내가 급할 때 말이오.
그러나, 추운 겨울
바로 내 앞에서 변기를 따뜻하게 데쳐준
당신을 내가 왜 원망했는지......
날 위해 시리도록 차가운 변기에 앉아있는
당신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게다가 용까지 쓰는 당신 모습.
반쯤 열린 문틈으로 들리는 당신의 신음,
그리고 떨어질 때 물 튀는 소리와 그 냄새......
그러나 나올 때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범하게 나오는 당신의 장한 모습.
데쳐 놓은 변기 식을까봐
고쟁이도 채 올리지 못하고
성급히 나오는 당신의 그 마음 씀씀이.
여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변기처럼 희고 깨끗하고 튼튼한 당신을
지저분하다고 생각한 나를
부디 용서하오.
정재윤
나를 용서하오.
난 당신이 지저분한 여잔 줄로만 알았소.
당신이 화장실을 오래 사용한 뒤
내가 들어가 보면
변기 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당신의 흔적.
건망증일까?
치매일까?
아냐, 이건
당신의 깔끔하지 못한 성격일꺼야 하고
단정하고 말았소.
지저분한 여자!!
그러나,
당신이 당신으 흔적들을 그대로 남기는 건
수돗세를 절약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소.
잠시나마 당신을 지저분하게 생각한 나를
용서하시오.
또, 아침이면
언제나 나보다 먼저 변기를 차지하는 당신을
난 무지무지 원망했었소.
특히 내가 급할 때 말이오.
그러나, 추운 겨울
바로 내 앞에서 변기를 따뜻하게 데쳐준
당신을 내가 왜 원망했는지......
날 위해 시리도록 차가운 변기에 앉아있는
당신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게다가 용까지 쓰는 당신 모습.
반쯤 열린 문틈으로 들리는 당신의 신음,
그리고 떨어질 때 물 튀는 소리와 그 냄새......
그러나 나올 때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범하게 나오는 당신의 장한 모습.
데쳐 놓은 변기 식을까봐
고쟁이도 채 올리지 못하고
성급히 나오는 당신의 그 마음 씀씀이.
여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변기처럼 희고 깨끗하고 튼튼한 당신을
지저분하다고 생각한 나를
부디 용서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