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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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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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

hanwori 0 5951
저자 : 김남조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노래를 청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름을 부르지 말아주십시오
나의 검은 밤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뭇별 눈감겨 주십시오
작은 틈새라도 실오리만한 빛도 막아주십시오
구석진 나의 골방에서
흥건히 피를 쏟아야 할 시간입니다.

까닭을 묻지 마십시오
내 병을 따지려 들지 마십시오
그저 긴긴 밤이 있어야 한다고만 알아주십시오
돌기둥에 머리를 부딛고 죽고싶던
야문 납덩이같은 외롬도
이 밤엔 내 핏속에 빠져 가녀린 나비처럼
숨져야 한다고만 알아 주십시오

죽어가는 사람이 거짓을 말하지 않듯이
나오 이 밤에 거짓말을 아니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내가 왔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내가 못간
그 한 가지밖에는
아무 설움도 보챈 일이 없었습니다

천심에 치솟던 피어린 연호
지심으로 부어 보낸 한없는 눈물
나의 이름을 불러 주지 마십시오
지금은 내 편히 쉴 그곳으로 어서 가렵니다

이따금
등혈같이 허줄한 가슴 붙안고
어린 아들처럼 안기려 오던
착한 내 사람 착한 내 사람
아무래도 목숨은 졌고
꽃잎인 양 훌훌 목숨은 졌고
남은 건 부디 수정같은 체념이어야
하겠습니다.
뭇별 눈감겨 주십시오
영원히 어둠으로 두어 주십시오
무덤엔 아무 말도 새기지 말아 주십시오

행여 슬펐다고 말을 전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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