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부수첩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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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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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수첩 29

저자 : 김해화     시집명 : 인부수첩
출판(발표)연도 : 1986     출판사 : 실천문학사
인부수첩 29

                                    김해화


잘 있거라
굳은 손 힘을 합하여
철근을 굽히다 말고
잘 못 휘어진 철근을 바루다 말고
우리 이렇게 쫓겨 떠나고 나면
순하게 남아있는 너희들은
여윈 삶 깊은 속까지 녹슬어 오는 철근 일에
술이 늘고 차츰 어둠에도 길이 들어
신 새벽 기다리던
그 눈빛조차도 녹슬어버리지나 않으랴

눈물보다 뜨겁게 소주를 마시며
지금 우리들이 잡은 손의 뜨거운 분노도
떨어진 장갑을 벗어 던지듯
쉽게 잊어버리고
도면대로 또는 약삭빠른 총무의 뜻대로
변경된 철근을 휘면서
단단한 오기도 우리들 해방의 꿈도
함께 굽혀버리지나 않으랴

철근쟁이 연수야 성국아 오연아

한차례 파업이 휩쓸고 간 공사장
너무 쉽게 패배한 싸움 끝에
쫓겨가는 우리들과 남아있는 너희들
누구는 새로 반장이 되고 누구는
새로 조장이 되어서
불순분자 박반장 씹새끼 김조장……
개 같은 총무에게 맞장구쳐
마음껏 떠나간 우리를 씹을지라도
통닭에 갈비를 뜯고 맥주를 마시고
몇 푼 일당을 올려 받고 새로 생긴
수당을 챙겨 넣을지라도
잊지 말거라
장마통 함바의 소주잔으로
막걸리 잔으로
뜨겁게 주고받은 노가다 해방의 세상
우리들 빛나는 노동의 꿈을
부디 잊지 말거라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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