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 고은-
hanw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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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8 15:56
저자 : 고은-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어린 시절, 고향 바닷가에서 자주 초록빛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빨랫줄은 너무 무거웠고 빨래가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오랜 병(病)은
착한 우단 저고리의 누님께 옮겨갔습니다.
아주 그 오동(梧桐)꽃의 폐장(肺臟)에 묻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누님은 이름 부를 남자가 없었고
오직 '하느님!' '하느님!'만을 불렀습니다.
저는 파리한 채, 누님의 혈맥(血脈)은 갈대밭의 애내로 울렸습니다.
이듬해 봄이 뒤뜰에서 살다 떠나면
어쩌다 늦게 피는 꽃에 봄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름 한동안 저는 흙을 파먹고 울었습니다.
비가 몹시 내렸고 마을 뒤 넓은 간석농지(干潟農地)는 홍수에 잠겼습니다.
누님께서 더욱 아름다왔기 때문에 가을이 왔습니다.
찬 세면(洗面) 물에 제 푸른 이마 주름이 떠오르고
그 수량(水量)을 피해 가을에는 하늘이 서서 우는 듯했습니다.
멀리 기적(汽笛)소리는 확실하고 그 뒤에 가을은 깊었습니다.
모조리 벗은 나무에 몇 잎새만 붙어 있을 때,
누님은 그 잎새들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맑은 뜰 그 땅 밑에서 뿌리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더 푸르기 때문에 제 눈 빠는 버릇이 자고
그러나 어디선가 제 행선지(行先地)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누님께서 기침을 시작한 뒤 저는 급격하게 적막하였습니다.
차라리 제 턱을 치켜들어 보아도
다만 제 발등은 노쇠(老衰)로 복수(復讐)받았습니다.
마침내 제가 참을 수 없게 누님은 피를 쏟았습니다.
한 아름의 치마폭으로 고히는 그것을 껴안았습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보았습니다, 누님의 깊은 부끄러움을.
그리고 그 동정(童貞) 안에 내숙(內宿)한 조석(潮汐)을.
그 뒤로 저의 잠은 누님의 잠이었습니다.
누님의 내실(內室)에는 어떤 고막(鼓膜)이 가득 찼고
저는 문 밖에서 순한 밤을 한 발자국씩 쓸었습니다.
누님께서 우단 저고리를 갈아입던 날,
저는 누님의 황홀한 시간을 더해서
겨울 바닷가를 헤매이다가 돌아왔습니다.
이듬해 봄의 음력(陰曆), 안개 묻은 빨랫줄을 가리키며
누님의 흰 손은 떨어지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울지 않고 그의 흰 도자(陶磁) 베개 가까이 누워
얼마만큼 그의 혼을 따라가다 왔습니다.
빨랫줄은 너무 무거웠고 빨래가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오랜 병(病)은
착한 우단 저고리의 누님께 옮겨갔습니다.
아주 그 오동(梧桐)꽃의 폐장(肺臟)에 묻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누님은 이름 부를 남자가 없었고
오직 '하느님!' '하느님!'만을 불렀습니다.
저는 파리한 채, 누님의 혈맥(血脈)은 갈대밭의 애내로 울렸습니다.
이듬해 봄이 뒤뜰에서 살다 떠나면
어쩌다 늦게 피는 꽃에 봄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름 한동안 저는 흙을 파먹고 울었습니다.
비가 몹시 내렸고 마을 뒤 넓은 간석농지(干潟農地)는 홍수에 잠겼습니다.
누님께서 더욱 아름다왔기 때문에 가을이 왔습니다.
찬 세면(洗面) 물에 제 푸른 이마 주름이 떠오르고
그 수량(水量)을 피해 가을에는 하늘이 서서 우는 듯했습니다.
멀리 기적(汽笛)소리는 확실하고 그 뒤에 가을은 깊었습니다.
모조리 벗은 나무에 몇 잎새만 붙어 있을 때,
누님은 그 잎새들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맑은 뜰 그 땅 밑에서 뿌리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더 푸르기 때문에 제 눈 빠는 버릇이 자고
그러나 어디선가 제 행선지(行先地)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누님께서 기침을 시작한 뒤 저는 급격하게 적막하였습니다.
차라리 제 턱을 치켜들어 보아도
다만 제 발등은 노쇠(老衰)로 복수(復讐)받았습니다.
마침내 제가 참을 수 없게 누님은 피를 쏟았습니다.
한 아름의 치마폭으로 고히는 그것을 껴안았습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보았습니다, 누님의 깊은 부끄러움을.
그리고 그 동정(童貞) 안에 내숙(內宿)한 조석(潮汐)을.
그 뒤로 저의 잠은 누님의 잠이었습니다.
누님의 내실(內室)에는 어떤 고막(鼓膜)이 가득 찼고
저는 문 밖에서 순한 밤을 한 발자국씩 쓸었습니다.
누님께서 우단 저고리를 갈아입던 날,
저는 누님의 황홀한 시간을 더해서
겨울 바닷가를 헤매이다가 돌아왔습니다.
이듬해 봄의 음력(陰曆), 안개 묻은 빨랫줄을 가리키며
누님의 흰 손은 떨어지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울지 않고 그의 흰 도자(陶磁) 베개 가까이 누워
얼마만큼 그의 혼을 따라가다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