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를 털며 -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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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를 털며 - 고은-

hanwori 0 4712
저자 : 고은-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허깨비가 아니다
지은 가을 곡식 엄숙함이여
벼 눕혀 말리면 안 된다 해도
쌀에 싸라기 있고
밥맛이 가신다 해도
아서라 볏단 세우기에 어디 일손 남아 돌더냐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논두렁에는
콩도 팥도 심지만 피가 성했다
때마침 찬바람에 벼 잘 말라
한 번 뒤집어 둔 다음
일찌감치 벼 타작하니
쉴 데 없는 마음 하나가 논 하나가 된다
탈곡기 먼지 속에서
늙어가는 안식구 일손 좋아
오직 두 눈만 뻥 뚫려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 큰놈도
거드는 솜씨 제법 건실하여서
하루해 질 무렵까지는
어둑발에 방아달 논 한 배미 다 털겠다
이 세상은 무슨 일로도 다른 세상 아니다
벌써 저녁 바람 찬 기운이 사납다
이 세상은 우리 세상 우리 자식이 아니더냐
된 일에 된 몸 쉬는 것도
건너마을 어른 지나는 참이라
벌써 다 터는가
우선 한 배미지요
쌀 좋겠네
편히 건너가시지요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아무리 나이 먹어도
말 한마디에는 언제나 오늘이 어린아이같다
옛날 옛적 타작에는 개상 탯돌이다가
옛날에는 홑태질로
하루내내 훑어내다가
이제는 탈곡기에 벼 털


벼 한 가마 한 가마 곳간에 부리니
곳간 문 열면 웃음 울음 가득하다
며칠 지나 모진 공판장에 내볼지라도
오늘 흐뭇흐뭇한 바 어이할 줄 모른다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허깨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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