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16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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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3 10:04
저자 : 박정순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1999
출판사 :
길.16
박정순
기척도 없이 고향으로 길 떠났다는
당신의 방문 앞엔
환한 등불로
비추었던 당신의 미소가 걸렸습니다
그 앞에 옹기 종기 모인
사람들의 얼굴엔 슬픔 한 자락
자리를 깔고
깔깔한 자존심만 풀칠하여 다림질한
언니의 목소리와
보드런 조카들의
핏기가신 눈망울이 흰 옷자락에 걸려
펄럭입니다.
폭죽 터지는 언니의 잔소리에도
“30분만 소나기 퍼붓고 나면 햇빛 비친다니까”
하고 웃음으로 벗어 놓은 당신의 허물은
큰그릇에 담을 수 있는 따뜻한 생이었습니다.
서편 하늘에선
당신을 영접하는 무지개가 섰고
무상대도의 길 걸으며 들려 준 말
“사랑할 날이 그리 많지 않은 생. 열심히 살아.”라며
이민 길에 손 잡아주던 당신을 위해
내가 고작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묏가에
올리는 시 한 줄만 젖어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박정순
기척도 없이 고향으로 길 떠났다는
당신의 방문 앞엔
환한 등불로
비추었던 당신의 미소가 걸렸습니다
그 앞에 옹기 종기 모인
사람들의 얼굴엔 슬픔 한 자락
자리를 깔고
깔깔한 자존심만 풀칠하여 다림질한
언니의 목소리와
보드런 조카들의
핏기가신 눈망울이 흰 옷자락에 걸려
펄럭입니다.
폭죽 터지는 언니의 잔소리에도
“30분만 소나기 퍼붓고 나면 햇빛 비친다니까”
하고 웃음으로 벗어 놓은 당신의 허물은
큰그릇에 담을 수 있는 따뜻한 생이었습니다.
서편 하늘에선
당신을 영접하는 무지개가 섰고
무상대도의 길 걸으며 들려 준 말
“사랑할 날이 그리 많지 않은 생. 열심히 살아.”라며
이민 길에 손 잡아주던 당신을 위해
내가 고작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묏가에
올리는 시 한 줄만 젖어서 돌아오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