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고추를 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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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물고추를 따며

가을 0 1319
저자 : 김시탁     시집명 : 아름다운 상처
출판(발표)연도 : 2001     출판사 : 문학마을사
끝물고추를 따며

김시탁


어머니와 함께 고추를 딴다
푸른 잎들과 대궁 사이로 손을 넣어
빨갛게 익은 고추를 골라
소쿠리에 따 담는다

어머니는 눈이 어두우신지
시퍼런 고추를 자꾸 만지작거리시며
힐끗힐끗 나를 돌아보시지만
나는 모른 채 고추를 딴다
덜 익은 고추는 그대로 두고
툭 건드리면 떨어질 듯 익은
고추만 딴다

가늘고 시퍼런 줄기에서도
꿈이 달릴 수 있다니
태양에 온몸을 불태우며
제자리에 매달려 영글 수 있다니
고추 고랑에 무릎을 꿇고
끝물 고추를 딴다

얼핏 보니
저 만치서 고추를 따는
구부러진 어머니 등도
발갛게 익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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