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들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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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들이 길을 간다

가을 0 985
저자 : 조수옥     시집명 : 어둠 속에서 별처럼 싹이 트다
출판(발표)연도 : 2002     출판사 : 갈무리
가로수들이 길을 간다

조수옥


가로수들이 길을 가기 시작한다
약국 앞의 은행나무도 벚나무도
푸른 팔을 흔들며 길을 간다
겨울 내내 저들의 침묵은 힘이었나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는 이파리들
나는 긴 겨울을 보내고도
새순 하나 내밀지 못했는데
힘차게 가지 뻗어 잎을 틔우며
제 길을 가는 가로수를 보면
문득 지난 겨울 눈보라를 맞던
가지들이 생간난다 아니다,
가지들은 눈보라를 후려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땅에 곤두박질치던 눈보라
그 가지들이 다시 일가를 이뤄
한 생의 푸른 물길을 튀우기 위해
도심 속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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