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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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꽃

가을 0 978
저자 : 조수옥     시집명 : 어둠 속에서 별처럼 싹이 트다
출판(발표)연도 : 2002     출판사 : 갈무리
개망초꽃

조수옥


상여는 마을 어귀를 몇 번 돌다
차마 떠나지 못하고 마을 동산 앞
노상에서 제를 지내기 위해 잠시 멈췄다
제문을 읽고 영정 앞에 재배를 올리고
상여꾼들 술을 마시며 잠시 쉴 즈음
늙은 팽나무 아래 구시렁구시렁 모인
마을 노인네들 불쌍하게 죽었다며 혀를 차네
평생 잘 입지도 먹지도 못하고
비 젖은 거적때기처럼 살았던 작은아버지
술 마시고 남의 집에서 급사한 게
무슨 호상이랴 그래도 마을에선 호상이라고
엊저녁부터 이장 박씨는
마을 회관에서 마이크로 부녀회원들은
일나가지 말라고 소리쳤다
모두 술 한잔씩 걸치자 징소리와 함게
상여는 마을을 떠나기 시작한다

머리에 흰 수건 쓰고
흰 치마저고리 차려입은 이승의 마을 선녀들
흰 천을 서로의 어깨 위에 걸쳐 메고
상여 뒤를 따르며 구성지게 후렴을 한다
   
오날 가면 언제 오실라요
오시는 날이나 알려주고 가게
에헤 에헤 에헤야~ 에헤 에헤 에헤야~
안 갈라네 못 가겠네
동네 친구 혼자 두고는 못가겠네
에헤 에헤 에헤야~ 에헤 에헤 에헤야~
천금 걷어주면 주막집 들려서
친구들과 술 한 잔 먹것네

꽹과리 치며 만가를 부르는 늙은 무당
상여 메는 상포계원들의 후렴 소리는
바람을 타고 서럽게 하늘을 타오른다

저 다리 건너기 힘이 들어 어쩐다냐
물이 있어 건너기 힘이 들어 어쩐다냐

그때마다 상여 새끼줄에 월천금이 나붙고
두건 쓴 젊은 상주 울음소리 하늘 찢는데
술 취한 상여꾼 어서 가자 호통친다
이제 마을 사람 죽어도 상여 멜 성한 사람
없으니 늙은 총각 늙은 아비들 모두 나와
품앗이로 상여를 메지만, 누가 알랴
우리 엄메 죽으면 상여는 누가 멜랑고
지난밤 윷을 놓던 김씨 술투정이 뇌리를 스친다

'昌寧 曺公 相國之柩' 라고 쓴 명정이
가을 바람에 휘날리며 붉은 울음을 긋네
젊은 시절 가다마이에 네꾸따이를 맨 영정이
울퉁불퉁한 이승길 터벅터벅 넘어가네
육이오 때, 개망초꽃 무더기로 핀 황토 밭머리
마을 부역쟁이들한테 몽둥이로 맞아 죽은
曺字 圭字 星字 할아버지
달빛도 시퍼렇게 멍이 들어 피를 흘렸다지
그 후 산으로 몸을 숨겨버린 작은아버지
몇 일 만에 겨우 찾아 아랫방에 가둬 놓고
용하다는 의원한테 침을 맞고 겨우 소생했지만
그때부터 열병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술로 세월을 퍼마시던 작은아버지
술 취하면 혼자 허공에 마구 퍼붓던 말들
하늘은 알고 있었을까

할아버지 비명소리 가슴에 꽂고 살아온
육십 평생
살아 아프지 않았던 날들 있으면 말해 보시라
살아 피 튀기지 않는 순간 있으면
어서 말해 보시라
들국화 핀 뒤시랑골 양지바른 산자락
한됫박 가을볕 뿌려진 황토구덩이

그 붉은 자궁 속으로 한 생애가 들어가네
마지막 담배불 서둘러 부벼 끄고
어여 나 이제 세상 그만 볼란다 하시며
무명천에 돌돌 말린 작은아버지 들어가시네
봉분 만들어 떼를 입히고 술을 따라 올리고
절을 하고 일어서자 푸드득 멧새 한 마리
숲 속 맹감덩쿨을 박차고 날아가네
개울가 상여 태우는 연기는 하늘을 치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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