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며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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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1 12:12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물새에게
출판(발표)연도 : 1983
출판사 : 문지사
비를 맞으며
이향아
내가 맞는 비는 마르지 않습니다.
내 위에 뿌리는 비는 흐르지도 못합니다.
스미고 스며 골수까지 파고 들어
평생을 두고 흘릴
눈물이 되고
더러는 자양의 샘도 되다가
드디어
내가 죽을 병이 될지라도.
추적이며 떠돌던 영혼이 돌아오듯
비는 제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처럼
낯설지 않게 옵니다.
빗물은 내 작은 육신의 안팎에서
눈 못 뜰 매운 모래가 되어 흩어지다가
아무도 모르는 그 어둠 속
순금을 고르는 손길처럼
잠든 내 사랑의 불씨를 흔들어 깨웁니다.
고개 숙여 그렇다고, 그렇다고,
비는 지금,
순종하는 목소리로 흐느끼며 옵니다.
비를 맞습니다.
운명을 참아내듯
마르지도 않을
흐르지도 못할
아무 것도 씻어낼 수 없는
다만 스며드는 비를 맞습니다.
이향아
내가 맞는 비는 마르지 않습니다.
내 위에 뿌리는 비는 흐르지도 못합니다.
스미고 스며 골수까지 파고 들어
평생을 두고 흘릴
눈물이 되고
더러는 자양의 샘도 되다가
드디어
내가 죽을 병이 될지라도.
추적이며 떠돌던 영혼이 돌아오듯
비는 제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처럼
낯설지 않게 옵니다.
빗물은 내 작은 육신의 안팎에서
눈 못 뜰 매운 모래가 되어 흩어지다가
아무도 모르는 그 어둠 속
순금을 고르는 손길처럼
잠든 내 사랑의 불씨를 흔들어 깨웁니다.
고개 숙여 그렇다고, 그렇다고,
비는 지금,
순종하는 목소리로 흐느끼며 옵니다.
비를 맞습니다.
운명을 참아내듯
마르지도 않을
흐르지도 못할
아무 것도 씻어낼 수 없는
다만 스며드는 비를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