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照準)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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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1 12:45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눈을 뜨는 연습
출판(발표)연도 : 1978
출판사 : 시문학사
조준(照準)
이향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두려운 일,
잔인한 일
속절없이 기척없이
내 생애의 목화 실꾸리를 자아올리는 일
도적질하듯 엿보는 일이다
우리가 죽을 때도 여기 모여
살아 생전 눈을 맞추듯
그렇게 죽음을 맞출 것이다
세상 하나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다
우리들 신고의 어깨 위로 쏟아지는
이 천천한 저음의 탄금소리
돌아앉으면 이내 깊은 어둠
약속을 하자
천 년이나 만 년 뒤의 해후라도
지금 무엇이라고
맹세를 하자
흐린 눈을 부비고 마주 보는,
초점을 맞추어 겨낭하는
뒤끓는 허무의 흔들리는 조준
우리들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슬피 믿는다는 일,
함께 쓰러지는 일,
모반의 엄청난 사건이다
이향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두려운 일,
잔인한 일
속절없이 기척없이
내 생애의 목화 실꾸리를 자아올리는 일
도적질하듯 엿보는 일이다
우리가 죽을 때도 여기 모여
살아 생전 눈을 맞추듯
그렇게 죽음을 맞출 것이다
세상 하나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다
우리들 신고의 어깨 위로 쏟아지는
이 천천한 저음의 탄금소리
돌아앉으면 이내 깊은 어둠
약속을 하자
천 년이나 만 년 뒤의 해후라도
지금 무엇이라고
맹세를 하자
흐린 눈을 부비고 마주 보는,
초점을 맞추어 겨낭하는
뒤끓는 허무의 흔들리는 조준
우리들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슬피 믿는다는 일,
함께 쓰러지는 일,
모반의 엄청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