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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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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여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눈을 뜨는 연습
출판(발표)연도 : 1978     출판사 : 시문학사
바람이여
 
                          이향아
 
 
  1

어느 날 바람 한 자락이 명주 목도리처럼 나를 졸라
내 어깨 위에 그 순수의 나이를 묻고
어여쁜 꿈 속에서 나를 구해 내었다
그 은밀한 오장 속 그늘까지 들어내 보이면서
들어내 보이면서
내 그럴 줄 눈채채고 있었지만
바람은 드세어지고
나는 차츰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2

오만 구비 잔등 넘어 어디가서 일 저지르다가
큰 근심 된 걱정마다 머물러 살다가
아, 왔다, 어느 날
희끗희끗 늙어서
내 진진토록 서서 앓던 것
와서는 이내 돌아갈 채비를 한다

  3

내 깊은 심중은 짐작도 못하고
빨랫줄에 내다 건 무료만 흔들다가
내 얼굴 솜털 하나 가만 놔두지 않고
눕히고 세우다가
해 다 진 보도로 날 끌어 내더니
혼자만 도망갈 차비를 한다
바람이다
반란이다

  4

눈물이야 흐르는 대도 그냥 눈물이지
그뿐이지
바람아,
내 피를 식혀 하천에 띄우고
천지팔방 어쩌지 못할
넘치는 내 신명이나 걷어가거라
걷어 가거라
바람이 등골에서 빠져 나간다
속옷을 벗듯 힘겨운
바람을 벗는다

  5

내 생애 건너 뛰어
몇 백년 씩 건너 뛰어
언제 와도 거기 하얗게 바스러져 가는
어리석은 소망이 있을 게라고
한 밤 풍랑에 서너 치씩 키가 자라
어느 모진 목숨 다스리는 등신 같은 기다림이
아직 있을 게라고
바람의 믿음이여, 내 아픔이여

  6

다 알고 있었어요 바람이여,
내 섬약한 심금을 딛고
수시로 내왕하심을
당신의 율법과 풍속과 미덕을 나는
알고 있었어요
그 질량이 내 공허에 빛을 던지고 걷으심도
아, 내 신열을 드디어 폭동을
나는 알고 나는 견디었어요

  7

나를 버린 바람이 천지를 덮고
칠흙의 언당에 나를 눕힌다
내 육신의 마디마다 점령의 기를 꽂고
내가 한 자락 변신한 바람이 되었음을
바람에 매달린 한 곡절의 노래임을
알아차릴 때까지
바람은 사정없이 내 위에 굽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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