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마시며
가을
0
896
2004.08.01 12:51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눈을 뜨는 연습
출판(발표)연도 : 1978
출판사 : 시문학사
물을 마시며
이향아
따뜻한 물 그릇을 두 손에 받쳐 들면
승천하던 이름들도 되돌아 본다
되돌아 오겠지
살아 있는 나 부러워서, 그리워서
끝내는 산천에 발 묻으러
되돌아 오고야 말겠지
내 작은 갈망의 요정(妖精)들은
창세 밖으로 풀리어 나가
흩어지는 비구름 아침 안개로
자유로운 은총의 물소리를 내겠지
따뜻한 물 한 그릇
혼신으로 떠 올리면
분별없이 혈색은 피어오르고
몇 모금 물만큼 살은 부풀어
오만 삭신 마디마다
펄럭이는, 아 무너져 내리는
내 목숨의 드높은 곡조여,
내 사랑의 수욕(受辱)이여
이향아
따뜻한 물 그릇을 두 손에 받쳐 들면
승천하던 이름들도 되돌아 본다
되돌아 오겠지
살아 있는 나 부러워서, 그리워서
끝내는 산천에 발 묻으러
되돌아 오고야 말겠지
내 작은 갈망의 요정(妖精)들은
창세 밖으로 풀리어 나가
흩어지는 비구름 아침 안개로
자유로운 은총의 물소리를 내겠지
따뜻한 물 한 그릇
혼신으로 떠 올리면
분별없이 혈색은 피어오르고
몇 모금 물만큼 살은 부풀어
오만 삭신 마디마다
펄럭이는, 아 무너져 내리는
내 목숨의 드높은 곡조여,
내 사랑의 수욕(受辱)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