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새벽 베갯잇에는
가을
0
822
2004.08.02 04:40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껍데기 한 칸
출판(발표)연도 : 1986
출판사 : 오상사
첫새벽 베갯잇에는
이향아
첫새벽 베갯잇에는
갓 떠나간 머리카락 몇 개 놀고 있다
아침은 차츰 밝아오고
생명을 넘겨준 부스러기로
해방된 오물의 자유로
버려진 머리카락은.
신진대사 때문이겠지.
풍화작용, 혹은 은퇴
아니 이것은
완전 쉼표.
과학시간에도 음악시간에도
학교가 나눠준 모든 지식은
결국 이별만을 아름답게 수식하고
항간에서 수십년 딩굴며 깨우친 경험은
두고 돌아서는 연습
금을 긋는 연습
떠나가거라, 오냐 떠나가거라
그들을 떼어놓을 때 그러면서
내 죽음을 함께 눈치챌 때도
으젓하게 노래부르는 연습.
차츰 아침은 밝아 오고
첫새벽 베갯잇 머리카락 몇 개
나를 재워 놓고야 몰래 빠져나간
저 속 깊은 정분
날마다 빠져나간 저것들은
길게 길게 저승에까지 가서 닿고
아무렇지 않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우리들의
이별.
이향아
첫새벽 베갯잇에는
갓 떠나간 머리카락 몇 개 놀고 있다
아침은 차츰 밝아오고
생명을 넘겨준 부스러기로
해방된 오물의 자유로
버려진 머리카락은.
신진대사 때문이겠지.
풍화작용, 혹은 은퇴
아니 이것은
완전 쉼표.
과학시간에도 음악시간에도
학교가 나눠준 모든 지식은
결국 이별만을 아름답게 수식하고
항간에서 수십년 딩굴며 깨우친 경험은
두고 돌아서는 연습
금을 긋는 연습
떠나가거라, 오냐 떠나가거라
그들을 떼어놓을 때 그러면서
내 죽음을 함께 눈치챌 때도
으젓하게 노래부르는 연습.
차츰 아침은 밝아 오고
첫새벽 베갯잇 머리카락 몇 개
나를 재워 놓고야 몰래 빠져나간
저 속 깊은 정분
날마다 빠져나간 저것들은
길게 길게 저승에까지 가서 닿고
아무렇지 않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우리들의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