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을 지으며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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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2 04:42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껍데기 한 칸
출판(발표)연도 : 1986
출판사 : 오상사
헛간을 지으며
이향아
헛간 하나를 더 지어야지
버리기는 아까운 빈 병, 눈부신 빛깔의 저 일회용 포장지를 위해서, 그들의 절망을 위로할 은근한 놀이터를 지어야지.
하루살이 일간 신문지, 365일 아우성치던 초호활자의 안식을 위해서, 유행에 뒤처진 노래와 잊혀져 가는 영광을 위해서 집을 지어야지.
버릇으로 견디는 묵은 살림, 알맹이만 하나씩 빼먹고 썩을 만한 것들은 썩어 물이 되어, 더러는 거름으로 스며들고 더러는 정기로 떠도는.
쓸개 없는 껍데기로 거리는 덜컹거린다. 바람이 불면 하늘이 공연한 든소문으로 어둡다. 설핏 눈감으면 조금씩 빠져나가는 소리, 아직도 빠져나가는 소리에 가위 눌린다.
버리기 싫은 추억.
인연이 아니라며 돌아간 사람, 품고 죽을 비밀을 위해, 밀려나는 고전을 위해 부활을 꿈구는 집을 짓는다.
마른 심지 끝에 입김만 불면 불이 붙을 것 같은 아직은 멀쩡한 정신을 위해서, 결국은 우리들 은둔을 위해서 잠복을 위해서,
헛간이라고 불리우고야 말 허무의 궁전을 짓는다. 껍데기 한 칸을 더 늘린다.
이향아
헛간 하나를 더 지어야지
버리기는 아까운 빈 병, 눈부신 빛깔의 저 일회용 포장지를 위해서, 그들의 절망을 위로할 은근한 놀이터를 지어야지.
하루살이 일간 신문지, 365일 아우성치던 초호활자의 안식을 위해서, 유행에 뒤처진 노래와 잊혀져 가는 영광을 위해서 집을 지어야지.
버릇으로 견디는 묵은 살림, 알맹이만 하나씩 빼먹고 썩을 만한 것들은 썩어 물이 되어, 더러는 거름으로 스며들고 더러는 정기로 떠도는.
쓸개 없는 껍데기로 거리는 덜컹거린다. 바람이 불면 하늘이 공연한 든소문으로 어둡다. 설핏 눈감으면 조금씩 빠져나가는 소리, 아직도 빠져나가는 소리에 가위 눌린다.
버리기 싫은 추억.
인연이 아니라며 돌아간 사람, 품고 죽을 비밀을 위해, 밀려나는 고전을 위해 부활을 꿈구는 집을 짓는다.
마른 심지 끝에 입김만 불면 불이 붙을 것 같은 아직은 멀쩡한 정신을 위해서, 결국은 우리들 은둔을 위해서 잠복을 위해서,
헛간이라고 불리우고야 말 허무의 궁전을 짓는다. 껍데기 한 칸을 더 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