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찰흙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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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찰흙 위로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갈꽃과 달빛과
출판(발표)연도 : 1987     출판사 : 홍익출판사
비는 찰흙 위로
 
                      이향아
 
 
날받아 묘비를 세우는 날
비가 온다

뒤돌아다 보았더니
소금기둥 되었다고
뒤돌아다 보았더니
돌이 되었다고
비석에 적히었다

내 신발 바닥 고무창에는
공동묘지 명당자리
따라오면서
죽어라고 엉겨붙는
이승의 찰흙

나도 찰흙처럼 엉겨붙어서
죽어라고 한 백 년 더
눌러 살꺼나

천둥 번개 벼락에
울먹이면서
내 사랑. 내 사랑아
뒤돌아다 볼거나

묘비나 세운다
한 평생을 오그려 두어 줄 써서
확실히 죽었노라
이름 새겨 세운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예삿일이라고
배는 찰흙 위로
자꾸자꾸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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