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와 강물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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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3 17:04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강물연가
출판(발표)연도 : 1989
출판사 : 나남
큰비와 강물
이향아
큰비가 쏟아지면 걱정이어요, 어머니.
강물은 느닷없이 묽게 희석이 될 거예요.
큰비 끝에 얼굴이 누렇게 뜬,
빈혈의 강물을 보셨겠지요.
질정 못할 그리움을 앓던 강물이
떠밀리듯 일어나 정신을 잃을까 걱정이어요, 어머니.
초죽음되어 논밭에 쓰러진 강물을 보셨겠지요.
비는 제 집을 찾아오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강물 위에 돌아와요.
바람나서 객지로 유랑하던 사람처럼 지쳐서 강물 위에 돌아와요.
속 썩은 창자를 붉게 붉게 뒤집어 보이면서 강물이 탕자를 안아 들이네요.
원수같은 자식이라고, 질긴 것이 핏줄이라고,
강물이 빗줄기를 끌어안고 몸부림을 치네요, 어머니.
큰비가 쏟아지면 나는 걱정이 돼요.
어머니의 빈혈이 걱정이 돼요.
이향아
큰비가 쏟아지면 걱정이어요, 어머니.
강물은 느닷없이 묽게 희석이 될 거예요.
큰비 끝에 얼굴이 누렇게 뜬,
빈혈의 강물을 보셨겠지요.
질정 못할 그리움을 앓던 강물이
떠밀리듯 일어나 정신을 잃을까 걱정이어요, 어머니.
초죽음되어 논밭에 쓰러진 강물을 보셨겠지요.
비는 제 집을 찾아오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강물 위에 돌아와요.
바람나서 객지로 유랑하던 사람처럼 지쳐서 강물 위에 돌아와요.
속 썩은 창자를 붉게 붉게 뒤집어 보이면서 강물이 탕자를 안아 들이네요.
원수같은 자식이라고, 질긴 것이 핏줄이라고,
강물이 빗줄기를 끌어안고 몸부림을 치네요, 어머니.
큰비가 쏟아지면 나는 걱정이 돼요.
어머니의 빈혈이 걱정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