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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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널고서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어디서 누가 실로폰을 두드리는가
출판(발표)연도 : 1993     출판사 : 도서출판 오상
빨래를 널고서
 
                    이향아
 
 
 빨래를 널었다.
 사지를 늘어뜨린 나의
 육신을
 창천에 표백하듯
 내다 걸었다.

 항복하는 사람처럼
 두 팔을 들고
 사모하기에는 아직 눈부신
 오늘은 해를 향해
 가슴을 풀었다.

 지금 나는 별로 큰
 소원도 없고
 그렇다고 흐느끼게
 설운 일도 없지만
 그리움을 알리는
 하얀 깃발 하나는
 마지막 별처럼 떠 있게
 하고 싶다.

 빨래를 널었다.
 제풀에 마르는 들풀처럼
 누워서
 유순한 복종으로
 흔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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