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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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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6 15:28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종이등 켜진 문간
출판(발표)연도 : 1997
출판사 : 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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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
나는 집에 없습니다
엄청 바쁩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혼자라도 하시지요
오늘 귀가는 밤이 늦을 것입니다
여럿이 모여 밥을 먹을 것이고
유리잔 몸뚱이를 부딪히면서
'위하여'
희망 하나 외마디쳐 내걸 겁니다
그러나 결국은 밥을 먹을 것입니다
웃으면 따라 웃고 맞장구를 치면서
밥이나 먹으려고 흐트리는 목숨
원경처럼 아련하게 뉘우칠 것입니다
독한 밥에 흐늘흐늘 몸이 삭아도
삼시 세끼 끼니는 거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없습니다
거울 앞에 머리카락 차분히 눕히고
겨우 밥이나 먹으려고 외출 중입니다
전할 말씀 있으면 남겨주세요
기침 몇 번 망설이다 끊을지라도
나는 당신임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이향아
나는 집에 없습니다
엄청 바쁩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혼자라도 하시지요
오늘 귀가는 밤이 늦을 것입니다
여럿이 모여 밥을 먹을 것이고
유리잔 몸뚱이를 부딪히면서
'위하여'
희망 하나 외마디쳐 내걸 겁니다
그러나 결국은 밥을 먹을 것입니다
웃으면 따라 웃고 맞장구를 치면서
밥이나 먹으려고 흐트리는 목숨
원경처럼 아련하게 뉘우칠 것입니다
독한 밥에 흐늘흐늘 몸이 삭아도
삼시 세끼 끼니는 거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없습니다
거울 앞에 머리카락 차분히 눕히고
겨우 밥이나 먹으려고 외출 중입니다
전할 말씀 있으면 남겨주세요
기침 몇 번 망설이다 끊을지라도
나는 당신임을 알아차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