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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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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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골짜기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종이등 켜진 문간
출판(발표)연도 : 1997     출판사 : 문학세계사
어느 골짜기
 
                      이향아
 
 
물이 끓는다
하얗게 푸르게 그리고 은밀하게
물은 안개 속에 길을 트고서
영원이 어디냐고 먼 길을 떠난다
나는 천천히 찬장문을 젖히고
가루 커피통의 뚜껑을 열고
가슴에 질러둔 빗장을 풀고
한 스푼 가득 눈짐작으로
가장 이쁜 찻잔을 꺼낼 것이다
투설나면 이내 죽을 독한 이야기
장도칼 입에 물고 피를 흘릴 비밀도
꺼낼 것이다 끓일 것이다
차를 끓이는 일은 날마다의 제사
슬프게 뜨고 사는 퀭한 눈으로
한 발짝씩 다가서는 어느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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