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십자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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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9 00:13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환상일기
출판(발표)연도 : 1998
출판사 : 시문학사
화려한 십자가
이향아
동네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예배당도 네 군데나 새로 문을 열었다
아파트로 솟아오른 십자가의 불빛은
밤을 지켜 새벽이면 빈혈이 깊어가도
그야 어떠랴, 아름다운 일이다
요즘 세상에서 유행하는 말로
기죽지 마, 기죽지 말라고
소리소리 저렇게 자즈러지면서도
하늘에 먼저 가서 닿으려는 발돋움
그야 어떠랴, 어여쁜 일이다
다만 이것만은 걱정이다
외롭던 성자의 피에 젖던 고난이
오늘은 에드벌룬처럼 떠 있어도 되는지
유명 메이커의 상표 속에서
저토록 헤픈 눈짓으로 손을 까불어도 되는지
화려한 십자가가
죄짐보다 무겁게 어깨를 짓누라는 새벽
기죽지 마, 지죽지 마,
나는 얼토당토 않게
기죽지 않을 것만 결심하였다
이향아
동네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예배당도 네 군데나 새로 문을 열었다
아파트로 솟아오른 십자가의 불빛은
밤을 지켜 새벽이면 빈혈이 깊어가도
그야 어떠랴, 아름다운 일이다
요즘 세상에서 유행하는 말로
기죽지 마, 기죽지 말라고
소리소리 저렇게 자즈러지면서도
하늘에 먼저 가서 닿으려는 발돋움
그야 어떠랴, 어여쁜 일이다
다만 이것만은 걱정이다
외롭던 성자의 피에 젖던 고난이
오늘은 에드벌룬처럼 떠 있어도 되는지
유명 메이커의 상표 속에서
저토록 헤픈 눈짓으로 손을 까불어도 되는지
화려한 십자가가
죄짐보다 무겁게 어깨를 짓누라는 새벽
기죽지 마, 지죽지 마,
나는 얼토당토 않게
기죽지 않을 것만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