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기다리며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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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9 14:31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오래된 슬픔 하나
출판(발표)연도 : 2001
출판사 : 시와시학사
자정을 기다리며
이향아
자정이 되기를 기다린다.
여기는 낡아버린 지상의 단 칸 마루
알이 깨여 목숨이 되는 때를 기다린다.
어둠은 가파르게 깊어 가고,
시간은 한 마디 선고처럼 막을 내릴 것이다.
더는 갈 수 없는 마지막 절정에서
만사를 작파하고 돌아서든지
눈 딱 감고 뛰어내리든지
꽃잎처럼 사무쳐 흩어지든지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야 말 것 같다.
열리는 새 땅에 꿈 하나를 걸든지
깡그리 잊어버리고 침몰하든지
그만 두든지, 다 그만 두든지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만 같다.
그래도 날마다 자정을 기다린다.
팔려 온 이방의 어린 신부처럼
낯설고도 아름다운 벼랑에 선다.
이향아
자정이 되기를 기다린다.
여기는 낡아버린 지상의 단 칸 마루
알이 깨여 목숨이 되는 때를 기다린다.
어둠은 가파르게 깊어 가고,
시간은 한 마디 선고처럼 막을 내릴 것이다.
더는 갈 수 없는 마지막 절정에서
만사를 작파하고 돌아서든지
눈 딱 감고 뛰어내리든지
꽃잎처럼 사무쳐 흩어지든지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야 말 것 같다.
열리는 새 땅에 꿈 하나를 걸든지
깡그리 잊어버리고 침몰하든지
그만 두든지, 다 그만 두든지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만 같다.
그래도 날마다 자정을 기다린다.
팔려 온 이방의 어린 신부처럼
낯설고도 아름다운 벼랑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