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위하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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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9 14:32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오래된 슬픔 하나
출판(발표)연도 : 2001
출판사 : 시와시학사
나무를 위하여
이향아
먼동에 눈 부비고 세상을 내다보면
유리창이 우리들을 갈라 놓았다.
나무들은 뜬눈으로 야경을 서고
나는 그를 믿고 깊은 잠에 빠졌다.
어제보다 두어 살은 늙어버린 나무.
내 잘못이다.
부신 햇빛 넉넉히 물감처럼 풀어서
속없이 머리칼이나 헹구고 싶은
이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다.
그를 위해 나도 되어야 한다는 생각
엽록소 안창으로 깊이 빠져서
길고 긴 수맥에서 물을 푸든지,
물 푸던 수맥에 주저앉아서
숫제 푸른 물이 되어 버리든지,
그를 위해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내가 그를 위해 늙어야 한다는 생각.
이향아
먼동에 눈 부비고 세상을 내다보면
유리창이 우리들을 갈라 놓았다.
나무들은 뜬눈으로 야경을 서고
나는 그를 믿고 깊은 잠에 빠졌다.
어제보다 두어 살은 늙어버린 나무.
내 잘못이다.
부신 햇빛 넉넉히 물감처럼 풀어서
속없이 머리칼이나 헹구고 싶은
이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다.
그를 위해 나도 되어야 한다는 생각
엽록소 안창으로 깊이 빠져서
길고 긴 수맥에서 물을 푸든지,
물 푸던 수맥에 주저앉아서
숫제 푸른 물이 되어 버리든지,
그를 위해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내가 그를 위해 늙어야 한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