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
가을
0
940
2004.08.09 19:25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오래된 슬픔 하나
출판(발표)연도 : 2001
출판사 : 시와시학사
결박
이향아
하필 끼니 때에 맞춰서 그집에 간 게 탈이었다.
저녁밥은 먹었냐고 물었을 때
난 또 왜 그렇게 당황했는지 모르겠다.
엉거주춤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비비 트는
내 어깨 너머로 일은 이상스럽게 꼬였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염치란 무엇이며 체면이란 과연 무엇인가,
같이 먹었으면 좋을 텐데, 그집 식구들은 아쉬워하는 듯하더니
'얘는 저녁 잘 먹고 왔데'
그중 잘난 이가 해설을 하더니,
'왜 혼자 먹었어?' 우리랑 함께 먹지.
제법 나무라기도 하더니,
그러더니 사정없이 일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먹었데', '배부르데', '먹기 싫데', '음식이라면 넌더리가 난데',
그들은 마치 내가 음식과 척이라도 진 것처럼 수백 번 못을 박았고
나는 사지를 옴싹달싹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저희끼리 진수성찬의 저녁밥을 말끔히 먹어 치웠고,
시간은 더디 가고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거기서 내가 어쩔 수 있었겠는가.
나는 결박을 풀 수가 없었다.
이향아
하필 끼니 때에 맞춰서 그집에 간 게 탈이었다.
저녁밥은 먹었냐고 물었을 때
난 또 왜 그렇게 당황했는지 모르겠다.
엉거주춤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비비 트는
내 어깨 너머로 일은 이상스럽게 꼬였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염치란 무엇이며 체면이란 과연 무엇인가,
같이 먹었으면 좋을 텐데, 그집 식구들은 아쉬워하는 듯하더니
'얘는 저녁 잘 먹고 왔데'
그중 잘난 이가 해설을 하더니,
'왜 혼자 먹었어?' 우리랑 함께 먹지.
제법 나무라기도 하더니,
그러더니 사정없이 일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먹었데', '배부르데', '먹기 싫데', '음식이라면 넌더리가 난데',
그들은 마치 내가 음식과 척이라도 진 것처럼 수백 번 못을 박았고
나는 사지를 옴싹달싹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저희끼리 진수성찬의 저녁밥을 말끔히 먹어 치웠고,
시간은 더디 가고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거기서 내가 어쩔 수 있었겠는가.
나는 결박을 풀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