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 대하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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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0 15:08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오래된 슬픔 하나
출판(발표)연도 : 2001
출판사 : 시와시학사
개에 대하여
이향아
흔히 '개같은 무엇'이라고 함부로 말하지만 나는 맹세코 그런 적 없다.
내가 감히 개를 무시하다니....나는 단지 개가 두러울 뿐이다.
마주 보면 그 눈에 빨려 들었고, 손에 닿으면 그 털에 놀랬으며,
반갑다고 뛰어 오르면 원시의 정글에 갇힌 듯 눈 앞이 캄캄했다.
그 중 미미는 약 먹은 쥐를 먹었다.
그 중 뽀삐는 바람나서 가출했다.
그 중 럭키는 술이 취해 죽었다.
햇살이 치렁치렁 취기처럼 흔들거리던 날,
감나무 아래 파묻은 포도주 찌거기를
그가 파먹을 줄 꿈에나 알았겠는가.
요약해서 말하자.
하나는 자살로, 하나는 연애로, 하나는 과음으로 떠났지만
그것은 핑계. 그들은 연신 내 사랑이 모자람만 짖어댔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영물이니까.
오래 응시하다가는 들킬 것이 뻔하니까.
개같은 것이나 무서워하는 인간인 나를 들킬 것이고,
안아 들일 품이 좁은 나를 들킬 것이고
그밖에 이런저런 것을 들키고야 말 것이니까.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영물이 아닌 보통개라도 날 깔볼 거야.
겨우 개같은 것이나 겁내는 나같은 인간을, 그는 철저히 무시할 거야.
이향아
흔히 '개같은 무엇'이라고 함부로 말하지만 나는 맹세코 그런 적 없다.
내가 감히 개를 무시하다니....나는 단지 개가 두러울 뿐이다.
마주 보면 그 눈에 빨려 들었고, 손에 닿으면 그 털에 놀랬으며,
반갑다고 뛰어 오르면 원시의 정글에 갇힌 듯 눈 앞이 캄캄했다.
그 중 미미는 약 먹은 쥐를 먹었다.
그 중 뽀삐는 바람나서 가출했다.
그 중 럭키는 술이 취해 죽었다.
햇살이 치렁치렁 취기처럼 흔들거리던 날,
감나무 아래 파묻은 포도주 찌거기를
그가 파먹을 줄 꿈에나 알았겠는가.
요약해서 말하자.
하나는 자살로, 하나는 연애로, 하나는 과음으로 떠났지만
그것은 핑계. 그들은 연신 내 사랑이 모자람만 짖어댔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영물이니까.
오래 응시하다가는 들킬 것이 뻔하니까.
개같은 것이나 무서워하는 인간인 나를 들킬 것이고,
안아 들일 품이 좁은 나를 들킬 것이고
그밖에 이런저런 것을 들키고야 말 것이니까.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영물이 아닌 보통개라도 날 깔볼 거야.
겨우 개같은 것이나 겁내는 나같은 인간을, 그는 철저히 무시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