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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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0 15:12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오래된 슬픔 하나
출판(발표)연도 : 2001
출판사 : 시와시학사
당신의 세월
이향아
일곱째 딸을 낳고 소박맞은 할머니는
쫓겨 가는 그 날도 젖이 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첫국밥 들자 마자 들에 나가셨다지요.
그래서 궂은 날은 삭신이 저리고
골천 마디 뼈끝이 흔들리신다지요.
당신에겐 잘못 없습니다. 어머니,
날 낳은 죄밖에, 내가 딸인 죄밖에는
괜찮다, 여자 몸 늙으면 다 그러니라.
하얗게 웃으며 손을 젓던 어머니,
'복이나 많고 명이나 길거라', 속깊은 한숨
그 축복을, 나는 그때 똑똑히 들었습니다.
마늘 먹고 쑥 먹고 도를 닦듯이
눈을 감고 돌 위에 새겼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안심하십시오,
어머니의 딸, 그 딸의 딸과 딸들이
저렇게 훼를 치며 날고 있는 창공이
무르 익은 과일처럼 향기롭지 않습니까 .
딸고만이, 후남이, 복례와 순이가
맘 놓고 질주하는 사통팔달의 거리.
태몽을 꾸듯 황홀한 천년의 열매를
당신의 치맛폭에 받으십시오, 어머니
길고 오랜 기다림을 하늘에 다시 걸어
어제보다도 넉넉한 그보다 더 고운
간절한 기도 하나 그리려고 합니다.
그런 깃발 하나를 흔들려고 합니다.
이향아
일곱째 딸을 낳고 소박맞은 할머니는
쫓겨 가는 그 날도 젖이 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첫국밥 들자 마자 들에 나가셨다지요.
그래서 궂은 날은 삭신이 저리고
골천 마디 뼈끝이 흔들리신다지요.
당신에겐 잘못 없습니다. 어머니,
날 낳은 죄밖에, 내가 딸인 죄밖에는
괜찮다, 여자 몸 늙으면 다 그러니라.
하얗게 웃으며 손을 젓던 어머니,
'복이나 많고 명이나 길거라', 속깊은 한숨
그 축복을, 나는 그때 똑똑히 들었습니다.
마늘 먹고 쑥 먹고 도를 닦듯이
눈을 감고 돌 위에 새겼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안심하십시오,
어머니의 딸, 그 딸의 딸과 딸들이
저렇게 훼를 치며 날고 있는 창공이
무르 익은 과일처럼 향기롭지 않습니까 .
딸고만이, 후남이, 복례와 순이가
맘 놓고 질주하는 사통팔달의 거리.
태몽을 꾸듯 황홀한 천년의 열매를
당신의 치맛폭에 받으십시오, 어머니
길고 오랜 기다림을 하늘에 다시 걸어
어제보다도 넉넉한 그보다 더 고운
간절한 기도 하나 그리려고 합니다.
그런 깃발 하나를 흔들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