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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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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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견학

국화꽃향기 0 1093
저자 : 정군수     시집명 : 눈물이 말라 빛이 된다는 것을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판문점 견학               
           
                      정 군 수


비무장지대에 비무장을 한 병사가 없듯
板門店에는 판자문을 단 상점이 없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진열대에 가득한 양주병들이
딸라가 없는 나를 가소로운 듯 내려본다
여러 인종들이 제집처럼 들락거리고
나는 이름표를 달고
유엔기 게양대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이방인처럼 사진을 찍다
그냥 볼 때는 몰랐는데 망원경으로 바라보니
판문각 초병의 얼굴에 봄볕이 앉아 있다
그냥 볼 때는 몰랐는데 망원경으로 바라보니
판문각 꽃밭에서도 나비들이 원을 그린다
凍土에서 흘러내린 물이 싹을 틔우는
동방예의지국 중간에서 판문점은
사바세계 온갖 적막한 것 다 거느리고
박물관 유리벽 속에 엎디어
숨을 쉬고 있다
손닿으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고조선 때 미이라처럼
몰래몰래 닳아지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어느 외국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낭만적이어서 슬픈 곳 
이국 병사의 碑銘이 새겨진
미루나무 그루터기
도끼날에 찍혀버린 이데올로기가
봄볕에 외롭다
치마바위에 치마를 널듯
눈썹 밑에 박혀있는 철책선 쇠말뚝에
심장 한 조각을 뜯어 걸어놓고
영문자 내 이름표를 뜯어버리고
빈 배낭을 메고 돌아오다   

199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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