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어 기다리리
국화꽃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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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4 23:26
저자 : 정군수
시집명 : 눈물이 말라 빛이 된다는 것을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무엇이 되어 기다리리
정 군 수
원평을 지나 귀신사로 오는 길
그 큰 느티나무 아래서
허리 굽은 할머니와 아기 업은 아낙과 어린 계집아이가
낡은 보퉁이와 늙은 호박덩이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길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버스가 올 때까지 그렇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칠보를 지나 산외로 나오는 길
수 백 년 묵은 정자나무 아래서
이 빠진 할아버지와 귀먹은 영감과 중풍 맞은 중노인이 아무렇게나 쭈그러뜨리고 앉아서 목을 길게 쳐들고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다.
천주교 묘지를 지나 소리개재를 오르는 길
까마귀도 때까치도 박새도 그냥 지나치는 곳
벼락 맞은 소나무와 말라죽은 모과나무와 고사목이 된 전나무가 팔을 벌리고
영구차가 지나갈 때마다 그렇게 말라비틀어진 팔을 벌리고 몇 년이고 서 있었다
나는 기다린다.
꼭 한 번은 올 것 같은 그 사람을,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가 올 것 같은 그곳을 바라보며 팔을 벌리고 내 영혼의 말라비틀어진 가지에 새 한 마리 쉬어가기를 기다린다. 그가 와도 결국은 누구인지를 모를 테지만 옛날도 지금도 나는 기다린다
정 군 수
원평을 지나 귀신사로 오는 길
그 큰 느티나무 아래서
허리 굽은 할머니와 아기 업은 아낙과 어린 계집아이가
낡은 보퉁이와 늙은 호박덩이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길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버스가 올 때까지 그렇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칠보를 지나 산외로 나오는 길
수 백 년 묵은 정자나무 아래서
이 빠진 할아버지와 귀먹은 영감과 중풍 맞은 중노인이 아무렇게나 쭈그러뜨리고 앉아서 목을 길게 쳐들고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다.
천주교 묘지를 지나 소리개재를 오르는 길
까마귀도 때까치도 박새도 그냥 지나치는 곳
벼락 맞은 소나무와 말라죽은 모과나무와 고사목이 된 전나무가 팔을 벌리고
영구차가 지나갈 때마다 그렇게 말라비틀어진 팔을 벌리고 몇 년이고 서 있었다
나는 기다린다.
꼭 한 번은 올 것 같은 그 사람을,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가 올 것 같은 그곳을 바라보며 팔을 벌리고 내 영혼의 말라비틀어진 가지에 새 한 마리 쉬어가기를 기다린다. 그가 와도 결국은 누구인지를 모를 테지만 옛날도 지금도 나는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