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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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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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톤

남궁성미 0 1026
저자 : 오자성     시집명 : 부처-되기, 신-되기
출판(발표)연도 : 2006년     출판사 : 현대시
그 유래없이 춥던 겨울날
온 가족 웅크리고 집에 쳐 박혀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웬 불청객이 왔나

늙고 초라한 아버지가 블랙박스를 메고 기우뚱
얼굴을 볼록렌즈에 들이밀고 서 있다
문을 열자 사시나무처럼 떠는 아버지
콧물을 흘리며 언 입을 실룩거리며 어이 왜 이리 추운
지 모르겠네

가방을 열더니 길쭉한 술병을 꺼내준다
넷째가 사왔다는 양주병에 담가 익힌 모과술
호가 치밀어, 술 좋아하지도 않잖아요 퉁명을 떤다
술병이 수류탄처럼 보여 얼른 밖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담요 속에서도 덜덜 떨며 그래도 저녁에 한두 잔 마시
면 건강에 좋지
잠도 잘 오고

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뒤
자꾸 MRI에 찍힌 아버지 굽은 등뼈가 눈에 보인다
연골판이 두 군데나 닳아 붙어버린 척추
다리 신경이 짓눌려 절뚝거리는 아버지
아버지는 점점 줄어들며 바톤처럼 작게 어둠 속으로 묻
혀간다

아, 신이 왔다, 아버지 등뼈
바톤을 넘겨주려 신이 방문한 것이다
술벼은 바톤이 되어, 술을 타고
내 몸 속으로 마디마디 꺽여 들어갔다
딸이 크며 이제 나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날 이후 세상의 모든 술병 속에는 굽은 등뼈가 들어
있다

[이 게시물은 가을님에 의해 2006-03-11 14:30:30 시등록(없는 시 올리기)(으)로 부터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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