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태양이 뜬 날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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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 18:18
저자 : 강성은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05
출판사 :
죽은 태양이 뜬 날
강성은
아무도 타지 않은 자동차들이 쌩쌩 달려갔다
눈먼 사람들이 지팡이를 짚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새들도 따라 날았다
달려오던 트럭에 그림자 하나가 치었다
습관적으로 신호등이 눈을 감았다
녹색 곰팡이들이 사방에서 쓸쓸히 피어났다
쇼윈도 안에선 폭 넓은 치마가 백 년째 불타고 있었다
불 속에서 늙은 배우들이 연극 연습을 했다
아무도 불을 끄지 않았다
누군가 공원 벤치에 앉아 죽은 태양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때로 태양의 붉은 피가 반짝거리며 죽은 자들의 이마를 찔렀다
묘비명들이 희미하게 짖어댔다
잠든 아이들만이 거리를 기웃거리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잠들었다
죽은 태양의 유령이 거리를 뒤덮었다
죽은 자들이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잠든 아이들의 눈꺼풀 속에서 검은 태양이 떠올랐다
강성은
아무도 타지 않은 자동차들이 쌩쌩 달려갔다
눈먼 사람들이 지팡이를 짚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새들도 따라 날았다
달려오던 트럭에 그림자 하나가 치었다
습관적으로 신호등이 눈을 감았다
녹색 곰팡이들이 사방에서 쓸쓸히 피어났다
쇼윈도 안에선 폭 넓은 치마가 백 년째 불타고 있었다
불 속에서 늙은 배우들이 연극 연습을 했다
아무도 불을 끄지 않았다
누군가 공원 벤치에 앉아 죽은 태양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때로 태양의 붉은 피가 반짝거리며 죽은 자들의 이마를 찔렀다
묘비명들이 희미하게 짖어댔다
잠든 아이들만이 거리를 기웃거리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잠들었다
죽은 태양의 유령이 거리를 뒤덮었다
죽은 자들이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잠든 아이들의 눈꺼풀 속에서 검은 태양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