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

홈 > 시 백과 > 시인등록
시인등록
 
시인의 약력을 소개하는 곳입니다.
등재를 원하는 시인께서는 게시판메뉴중 <운영자에게> 에다 회원등업요청을 하시고 등업후 약력을 올리시거나, 또는 등업요청하실때에 프로필과 사진까지 첨부해주시면 운영자가 회원등급조정과 함께 프로필을 정리하여 "시인약력"으로 옮겨드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곳에 프로필이 등재되면 시전체보기에 작품을 올리실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링크1'에 홈페이지 주소를 입력하시면 '시인의 홈피'에서 연결됩니다(http://를 붙여주세요) 

11 Comments
자연 2011.09.30 18:57  
미술관에서 애인을 삽니다

박종인


미술관이 하품할 때 나는 슬쩍 입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림이 열차처럼 한 량 열 량 늘어서 있습니다 증거물을 찾으려고 차창 안팎에 돋보기를 들이댑니다 나는 그림을 읽고 있습니다. 바퀴들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마네의 요리<풀밭 위의 식사>가 도마 위에 오릅니다 오소소 닭살 돋은 닭다리를 집어 들자 두드러기가 일어납니다 내 안의 검문소가 철컥철컥 ‘여자는 느끼고 남자는 생각한다’라는 단서를 포착합니다 발가벗은 여인의 알리바이를 조사합니다 양복 입은 두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탕탕탕

열차를 뒤지다 명암을 요리한 화가들이 마술사로 변장하여 사기 치는 현장을 포박합니다 세상은 해학입니다 어둠과 음침함, 밝음과 깔끔함,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교묘하게 채색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킨 죄를 추가합니다

달리고 있는 열차 7호 칸에서 화가들의 죄목에 대해 조서를 꾸밉니다 고갱이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절묘한 색채로 요리했다 변론합니다 우리는 입으로 들어가 항문으로 가는 중입니다 듣고 있던 싯다르타와 플라톤과 막스가 판결을 내립니다. “당신은 유죄입니다” 탕탕탕

미술관에 갇힌 화가들은 색채로 마술을 부린 죄로 심판을 받습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 화가는 분명 마술의 대가, 치러야할 형량이 늘어납니다 보시죠. 면회 오는 저 끊임없는 발길들을, 애인을 한 점 사서 드셔보시죠 열애의 맛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자연 2011.09.30 19:12  
난을 치며






벼루에 붓이 접근한다
붓 낚싯대
먹물의 중심을 흔든다
출렁이면서 미끼를 무는 강
낚싯대는 재빨리 고기 한 마리를
화선지로 끌어 올린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한 뼘, 강이 팔딱팔딱 낚인다
낚싯대는 강을 자꾸 낚아 올리고
뾰족뾰족한 입들
흥분을 일으키는 스킨십 엔도르핀이 솟는다
도파민의 척도가 쑥 올라간다

먹물 한 점 한 점
여백을 향해 줄기를 뻗는다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싱싱한 세상이 태어난다

한 폭의 풍경을 벽에 건다
묵향이 그윽하다
자연 2011.09.30 19:13  
자연오리지널 시나리오

 

  나는 生의 절정을 아는 예언자, 미의 여왕 아프로디테가 가슴에 꽃잎을 달고 오는 걸음도 안다 자박자박 꽃들이 4월을 걸어 5월의 나뭇가지 위에 앉아 쉬었다 간다 떨어지는 꽃잎을 편안하게 눕히려  푸른 침대를 활짝 펼친다 시드는 꽃잎을 위해 나무는 무덤처럼 동그란 그늘을 만들기도 한다 뚝뚝 나무위에서 三千宮女들이 뛰어내린다

  동물원 잔디밭 나무 그늘 속에 누워 아프로디테가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땅위에 풀밭을 펼쳐놓고, 하늘에는 눈부신 둥근 모자가 걸려있다 쌔근쌔근 고른 숨소리에 밀려 구름이 천천히 서산을 넘어간다 서산 아래 아프로디테의 머플러가 굽이굽이 흘러간다 아프로디테의 꿈밖으로 꽃잎들이 떨어진다

  봄은 아프로디테가 꾸는 꿈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떨어지는 꽃들의 손을 잠시 잡았다 놓는다 읽던 꽃을 덮고, 햇빛도 덮고. 나무도 덮고, 마지막으로 봄을 덮고 잠든 그녀를 바라본다 보리수 잎을 건너 바람이 불어오고, 나무들이 빠르게 책장 넘기는 소리에 아프로디테가 낮잠에서 깨어난다 백조들이 잔잔한 신화 속에 발을 담그고 헤엄친다 유유히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이 흘러간다 길게 목을 뺀

  백조들이 물음표처럼 호수 위에 떠서 수면을 바라본다 물음표들이 이유 없이 쓸쓸해 보인다 호수위에 찍힌 저 물음표들의 정답은 오직 하늘만이 갖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문장에 붉은 노을을 친다 온점처럼 찍힌 해가 서산으로 진다 서산 너머로 뚝뚝 봄이 떨어진다
자연 2011.09.30 19:15  
다국적군 지휘자


 
  뉴스는 장마전선의 이동행로를 보고 했다 허공이 바람을 지휘하며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이불백기를 빨랫줄에 내걸며 조용히 의사를 표명했다 행여 칠월의 우울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안팎을 들락거리며 화해를 요청했다 나의 노력에도 허공은 몇 개의 화살을 후두둑, 쏘아대기 시작했다 기를 쓰며 내다 걸었던 백기를 걷어버렸다 굵은 화살에 난타당한 집들은 일제히 곡소리를 떨어뜨리고,

  나는 전열(戰列)을 정리했다 먼지떨이 걸레 쓰레기통까지 총 동원, 창문과 안경마저 흐려놓은 습기를 닦아내고 집으로 쳐들어온 빗소리를 담아 문밖에 내놓았다 허공은 재빨리 어둠으로 집 주위를 에워쌌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지 나는 맞수를 던졌다 먼저 거실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나 불발! 서둘러 우산방패로 날아드는 화살을 막으며 구멍가게에서 형광등을 지원 받았다 

  불빛이 집을 장악하자 빗소리가 움찔, 물러섰고 TV가 볼륨을 올렸고 밥솥이 펄펄 끓었다 집이 드디어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방에 갇힌 아이들 웃음이 뛰어나와 거실바닥에 뒹굴었다 딩동, 집이 문 열고, 퇴근하는 식구 부대 전열 재정비 흥분한 7월이 비를 뿌리며 쾅쾅 창을 두드려도 이제 아무도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빗물이 밥물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자연 2011.09.30 19:16  
아내가 결혼했다



포장된 두 사람 그 곁에 양가 어른이 앉아 있다 안내 맡은 머리말 식순에 따라 사회 보던 목차 큰 제목 주례사도 흠칫, 군데군데 띄어쓰기한 틈새로 의자들 뒤돌아본다 서늘해진 각주와 난외주 행간을 어눌한 성혼선언문이 채운다 고딕체도 앉아 멋쩍게 목례 보내오고 오랜만에 본 글자들도 판에 박힌 표정으로 삽화처럼, 쉼표 마침표 줄임표는 물음표로 여백을 남긴다

축의금이 궁금증을 피로연으로 끌고 간다 신혼여행지는 목차에 빠져 입으로 전해지고 몇 페이지까지 읽을 수 있을까 먼저 첫날밤을 보낸 은유는 두 번째의 첫밤을 짜릿하게 치를 수 있을까

부록 같은 아이들, 신혼생활의 몰입은 잠깐, 긴장과 불안을 뚫는 클라이맥스에선 분노의 카타르시스를, 책의 표지가 눈짓하는 마지막 장의 빈 페이지는 느낌표를 복수의 칼날로 끌어안는다 오래된 과거가 새로운 生의 행간을 따라 미래를 추적 한다



꽃들이 피고 지는 도발적인 봄날이다
자연 2011.09.30 19:16  
장롱 리폼



편지를 쓴다 아이의 양 볼에 편지를 쓴다
아롱아롱 퍼지는 글씨
두 눈망울 그렁그렁 문장을 만들고
울음을 안은 단락이 장롱을 열어젖힌다

나는 옷걸이에 물음표를 가득 걸어 둔다

편지를 쓴다 아이의 양손에 편지를 쓴다
아이가 장롱처럼 열린다
장롱에 다양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들은 닫힌 서랍 같다
내 장롱은 늘 열어 두고
색색의 아이가 되어 손 내밀고 아이들을 연다

나는 아이의 장롱에 들어가 아이 하나를 들고 서 있다

다시 편지를 쓴다 아이의 양다리에 편지를 쓴다
서랍을 당기자 아이의 어제가 열리고
구멍 난 바지에 깨진 무릎이 흘러나온다
아이의 키가 훌쩍 자라있다
깡총 발목이 드러난 발목이
내 품을 뛰쳐나간다

나는 사라진 아이를 안고 다시 장문의 편지를 쓴다
아이의 가슴에 엄마라는 글씨를 쓰는 순간
꽃봉오리 아이가 흐드러지게 핀다

잘 개켜진 아이가
나비를 부르는 꽃향기가 거실과 방안을 날아다닌다

옷걸이에는 사계절 아이가 걸려 있다
자연 2011.09.30 19:17  
발칙한 원조교제

 


  낙원동 골목으로 들어섰어 성냥갑에서 빠져나온 성냥개비들, 모두 불씨를 안고 있었지 누군가 스치기라도 하면 확 불붙을 참이었어 우리는 술렁대는 어둠을 피해 불꽃 피울 곳을 찾았지 여기저기 기웃대다 원조라고 우기는 집으로 들어섰어 삶의 뒷마당이 보이더군 평생 식탐으로 배를 채운 아귀는 파도를 몇 섬이나 삼켰을까? 성냥개비가 불꽃을 피며 식탁 중앙에 놓인 커다란 아귀에 불을 당겼어 솟구치는 매운 감정이 냄비 속에서 펄펄 끓었지

  어시장 좌판에 널린 녀석의 뱃속에서 조기가 튀어나오고 곰삭은 가자미의 눈알이 튀어나오고 설익은 파도 한 장 꼬챙이에 끌려 나왔지 독은 아귀의 입술에 있다고 노파가 말했지만,

  순식간에 大자 아귀 한 마리를 해체했지 잇몸이 근질근질한 입들 화끈 타올랐어 元祖가 援助가 될 때까지 몇 사람이 뼈째 씹혔어 이빨보다 더 무서운 입술이었지 식탐으로 쌓아올린 生의 골격은 생각보다 물렁했어 아귀의 눈물 같은 것이 굶주린 탐욕 사이로 꺼져갔지 입은 하나의 커다란 무덤이었어
자연 2011.09.30 19:18  
가마솥 원형경기장

 


폭염이 질주한다
건물이 후끈 달아오른다
한나절 중불이 열기를 부추긴다
뼈를 녹일 기세의 복달임
김을 쬔 여자의 얼굴이 부어 보인다
더위를 빼문 개 한 마리
묶였던 울음을 가마솥에 쏟아낸다
제 주인을 핥던 그 주둥이로 뜨거움을 토해낸다
쇠창살을 긁어대던 발목이 녹아내리고
파르르 가마솥을 들쑤신다 힘이 흘러넘친다
아낙의 식칼이 설익은 죽음을 찔러본다
희멀건 복낭이 갈라진다
한번도 어미가 되지 못한 젖꼭지
들러붙은 뱃가죽
식칼이 다시 고기를 뒤집는다
개고기는 기름진 배받이가 제일이지
투견이 잡견으로 변하는 영양탕집
내장을 내준 복부가 최상품이라고
잡견의 맛이 최고라고 허기진 배가 응원 한다
생전에 걷어차인 똥개가 결승선을 넘는다
종주를 마친 주검은 이제 한껏 편안하다
자연 2011.09.30 19:19  
깊은 동굴

 

  어둠은 일용할 양식, 오랫동안 어둠을 갉아먹은 내 입에선 이끼냄새가 나지 내 입의 크기에 맞게 어둠은 잘려지지 그러니까 네가 동굴에 들어서는 순간, 내 혓바닥에 통째로 올려지는 셈이지 밀봉된 동굴을 함부로 열지마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건 내가 입맛을 다셨기 때문이야 너를 한입에 삼킬 수도 있어

  군침을 흘릴 때마다 석순은 자라지 혓바닥에 검은 물이 들면 별미인 종유석을 늘려 먹곤 해 나를 곱씹고 곱씹어서 구멍은 점점 깊어지지 어둠에 갇혀 제 살을 파먹고 제 피를 마시는 고통을 넌 짐작이나 하니? 퀭한 눈은 거꾸로 서 있는 세상을 바라보지 빛에 닿으면 눈이 멀고 마는 나는 어둠이야 박쥐는 날 붙들고 잠들지 박쥐에겐 내가 하늘이며 땅이야
자연 2011.09.30 19:25  
젖은 책을 읽다


별장 앞에 두꺼운 책 한 권 파란 글씨들이 움직인다 바람이 책장을 넘기고 글자들 저마다 수군거린다 키 큰 나무가 무엇인가 찾아 두리번거린다

손에 침을 묻힌 빗방울 쪽수를 확인한다 이리저리 글씨를 흔들어본다 마른 글씨들을 찾고 있다 조심해 아차하면 책장이 찢기니까 맨 앞줄에선 글씨가 소리친다 누군가 페이지를 북 찢어간다 그 바람에 쪽수가 달라지고 숨겨둔 향기가 한 움큼 날아간다

젖은 머리가 싫어요 ‘울음’이라는 글씨가 도리질을 해요 난 목이 말라요 ‘갈증’이란 글자가 마른 침을 삼켰어요 살살 만져요 ‘겁쟁이’라는 글자가 겁을 먹고 파랗게 질렸어요 건드리지 마세요 ‘가시’라는 글씨가 가시를 세웠어요

그 많은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없나봐요 맨 뒷장 키 큰 나무가 벌컥 물을 들이켜고 옷이 다 젖었어요 꺾인 고개가 어깨까지 흘러 내리고 아, 비가 그쳤어요 책 한 권이 흠뻑 젖고 퉁퉁 불은 글자들이 떠내려와요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책,

 나는 저 숲이라는 책을 말려서 다시 읽을 거예요
자연 2011.09.30 19:26  
솔로이스트

 


  몇 해 전 땅에 묻었던 그가 꽃씨가 아니란다 찾아간 무덤 위는 잡초만 어지럽고 엉킨 마음을 뽑아도 기다리는 그는 피지 않았다 상석 위에는 봄이 몇 번 앉았다 갔는지 오래된 솔방울과 솔잎들이 말라가고 주변 아카시아 잎만 분분히 날리는,

  무덤은 세상을 향해 열어놓은 그의 과묵한 입 나무들이 쪼그려 앉아 그가 하는 노래를 듣고 개울물은 중얼중얼 아랫마을로 달리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두드리고, 꽃 피지 못한 마음을 쓰다듬고, 뚫린 하늘에서 새어나온 빛들이 무덤을 감쌌지만, 그가 묻힌 바깥에서만 꽃들이 펑펑 터졌다

  비몽과 사몽 사이에서도 소문은 끈질긴 잡초였다 나는 그에게 한 번이라도 꽃이었나 곧 그의 무덤 옆에 마음을 묻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면 꽃씨처럼 내가 그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걸어 나올 것이다 누군가 활짝 핀 나와 그를 꺾어 꽃병에 꽂을 것이다

천봉 이성두

댓글 1 | 조회 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