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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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 장례식

임의 장례식
                                                                        박얼서 / 詩

마지막 배웅을 위해 모였습니다
형제들 빠짐없이 다 모였습니다
맨 처음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에
너무 쉽게 혈육을 잃은 슬픔에
잠시 말문을 닫아둡니다
군대에 있는 막둥이 말고는
친분들까지 모두 다 모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운 당신은 이미
저 높고 푸르른 하늘 길 따라
먼 길 떠나신 뒤였습니다

가을 한창 무르익었습니다
그런 가을이 무너져버렸습니다
푸른 하늘 좋아하시던 가을인데
여행 맘껏 즐기시던 가을인데
하늘이 이 원망을 받아줄까요

입관식이 진행됩니다
영면을 위한 마지막 자리입니다
다들 슬픔이 커서인지
숨죽인 오열이 저미어옵니다
이럴 땐 차라리
후련한 소나기라도 간절하여
누군가 곡(哭)이라도
한바탕 절실해집니다

설움들이 모여들어 몸부림칩니다
누르며 꾹꾹 참아봅니다
그러다 봇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동생! 잘 가소' 이 한마디에
더 이상은 참아내질 못했습니다

영전(靈前)에 다가섭니다
마을 회관에서 대문 앞에 이르는
골목길을 말없이 걸어봅니다
뜰 마당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눈치 빠른 은행나무가 슬퍼합니다
순치된 노랑이가, 물고기들이
이 가을을 시리도록 슬퍼합니다
생전의 수많은 기억들이
향로 주위를 맴돌다 저 멀리
하늘 품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국화꽃 새하얀 마음들이
위로와 애도를 표시합니다

하지만 그리운 당신은 이미
저 높고 푸르른 하늘 길 따라
먼 길 떠나신 뒤였습니다

운구차가 승화장에 도착했습니다
소각로가 가동을 시작합니다
육중한 이승의 미련들이 태워집니다
작은 우주 하나가 사라집니다
한줌 재만 남긴 채 형체도 없이
금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픈 상처 위로
이름 모를 철새 한 마리
서툰 날갯짓을 하고 날아갑니다

하지만 그리운 당신은 이미
저 높고 푸르른 하늘 길 따라
북망산천 머나먼 길
홀로 떠나가신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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