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권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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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권선옥

고갱이 0 2561
낙타
                        권 선 옥

늙은 낙타는 모래벌판을 걷는다.
바람 부는 모래벌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젊어서는 아무리 넓은 벌판에 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벌판 끝 어딘가에는 샘이 솟고, 풀이 자랄 것을 믿었다.
믿음은 언제나 힘을 주었고, 힘은 다시 믿음을 얻게 했다.
그러나 이제 늙어버린 낙타는 힘도 잃고, 믿음도 잃었다.

늙은 낙타는 바람에 쓰러져 눕는다.
물주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비었고,
이 넓은 모래벌판을 건너 어디로 간단 말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 쓰러진 낙타는 일어서고 싶지 않다.
이대로 누워 기다리면 바람이 무덤을 만들어
늙은 낙타를 편안히 쉬게 하리라.
일어서면 안 된다. 낙타야.
일어서서 다시 끝없는 먼 길을 쉬지 않고 가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 몸을 묻어야 한다.

낙타는, 불쌍한 늙은 낙타는
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먼 길을 걷는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낙타, 아무 꿈도 없이
걸어야 하다는 생각만으로 걸어가는 낙타,
바람 부는 빈 들판을 멀리 바라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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