廢寸行 -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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廢寸行 - 신경림

유용선 1 2569
廢寸行

                    신경림

떨어져나간 대문짝
안마당에 복사꽃이 빨갛다
가마솥이 그냥 걸려 있다
벌겋게 녹이 슬었다

잡초가 우거진 부엌바닥
아무렇게나 버려진 가계부엔
콩나물값과 친정 어미한테 쓰다 만
편지

빈집 서넛 더 더듬다가
폐광을 올라가는 길에서 한 늙은이 만나
동무들 소식 물으니
서울 내 사는 데서 멀지 않은
산동네 이름 두어 곳을 댄다.
1 Comments
유용선 2004.01.15 01:22  
"이곳이 한 때는 광산이었데." 스키장 또는 카지노에 놀러온 사람들은 그렇게만 말할 테지. 폐광은 그저 과정일 뿐 기록할 가치도 없으니까. 가마솥 남기고 떠난 사람들 그 다음엔 "이곳이 옛날엔 가난한 산동네였어" 하는 나팔소리에 떠밀려 또 한 번 쫓겨날 것이 자명하지. 우리 부모님은 운이 좋아 정릉산 16번지를 당당하게 제 힘으로 떠났었지. 그곳에 가보았더니 지금 풍림 아파트 단지더라고 이야기해 드렸지. 부모님은 그저 '그러니?' 하실 뿐이었지만 내겐 보육원 시절이랑 초등학교 1학년이 생생한 흙냄새 나는 고향이지. 흙냄새 나던 내 고향은 지금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가 되었지. 이 시를 읽으며 자꾸만 콧날이 시큰해지는 건 시가 슬퍼서인가, 어떤 이들의 곤고한 삶이 걱정되어서인가, 아니면 고향 없는 서울 태생의 내 처지가 헛헛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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