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 최정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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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 최정연 시인

사슴 0 3550
관계 / 최정연


사랑을 믿었고 세상의 모든 관계의 영원함을 노래했다
그때 덕수궁 돌담길을 막 걸어나온 스물두 살 가을이었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달빛으로 왔다
고요한 저 달빛도 스스로를 난파해 이지러질 때 있어
당신과 나의 부두에 쓰나미를 몰고 왔다

달빛이 지나간 자리에 내 마음의 성토에,
빗살무늬 문양이 그려지고
신석기 시대부터 달빛은 나를 빚고 있었다
저 푸른 혈맥들이 조각조각 나를 꿰매고 간다

달빛이 지나간 자리에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었던가?
지난밤 라일락 향기에 취해 운명이 질식사 했다
나는 그것을 달빛 탓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야누스 당신과도 마주 보고 싶은 봄밤
심장은 뛰는데 나는 죽었다

살아야겠다 아직 새가 날지 않았으니,
나는 세상의 모오든 달빛을 불러 모으고
달빛 실 한 올 한 올 풀어
우리들의 죽지 않는 바다를 수놓으려 한다

세상 것에 매달리지 말라 영원한 것은 없다*
불행한 것들은 모두 바다로 갔다

피의 바다

동그란 내 입안에 물집들이 꽃으로 필 때까지
나는 당신의 농익은 상처들을 받아먹으려 한다
그리하여 천 년의 산통으로 평화롭고 고요한 당신의 봄을
다시 잉태하려 한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최정연 시인
ㆍ경남 의령 출생 2011년『시에 신인상』등단. 2012년 시집『시가 마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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