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으로 길 떠날 사람 / 양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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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으로 길 떠날 사람 / 양전형

밤바다 0 3058
어둠 속으로 길 떠날 사람
                         
설령, 우리가 거꾸로 가는 길 안다면
나는 모아 둔 하루들을 다 버리고 싶나니
버리며 버리며 아이로 아기로
마침내 아슥한 어머니 속으로 돌아가고 싶나니
어둠 속으로 길 떠날 사람아,

흘러온 샛강의 시간이 그립다
거울 뒤에 숨은 그대를 찾는다
거울 앞에 선다
부릅뜨고 나를 읽으려는 거울이 두려워
뒤돌아선다
너절로 어둠의 길 떠날 사람아,
예약된 시간을 다 가진들 다 버린들
어차피 사라지고 말 형체들
가는 일은 우리의 일상이 아니던가

가는 길에
내 안에 일렁이는 탑동 바닷가에 잠시 앉아
한사코 방파벽 두드리는
그대의 작은 손 만져줘라
허공을 내려오는 어둠의 소리마저 차갑다
굽이치는 물결들 끌고
다시 어둠 속으로 길 떠날 사람아,

가거든,
캄캄한 세상 다시 밝히려
어둑새벽쯤 해 하나 등에 이고 오려느냐
우주의 싱싱한 피 마시며
폐 깊이 들날숨 끌어안고
사금파리 같은 목숨 부여쥐고 오겠느냐
동쪽으로 절름절름 갈 사람아,

마음이 자꾸 피어나는 이 봄날
책상 위에 펼쳐 놓은 하루가
온통 그리움이 아니더냐
어둠 속에 꽃등 밝힌 수국처럼
울멍진 기억들이
사뭇 무겁지 않겠느냐
아아, 꽃잎 분분히 날리며
어둠 속으로 길 떠날 내 영혼의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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