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든 사람 /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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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든 사람 / 최한나

dasarang 0 4264
철 든 사람

최 한 나

 


그의 몸속엔 철이 들어있다
대퇴에 뿌리 내린 금속이 숨을 쉬는 한
그는 이제 세상의 모든 자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자주 절룩거리고 걷다가 벽에 기대어 서는 것은
어떤 중력이 몸속의 철을 끌어당긴 것이다
철은 몸 안에서 몸 밖의 자력을 느낀다
그는 철을 몸에 넣고 나서
잠깐 동안이지만 불멸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 중 가장 무겁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마구 휘젓던 그의 발길질이 과묵해져 갈수록
골목길에 햇빛이 놀러오기 시작했다
꽁꽁 숨었던 개들의 꼬리들마저
자성에 취한 듯 춤을 추었지만
허방만 잘못 짚어 우두둑거리는 발목은
골목길을 끌며 걸어간다
뛰어놀던 꼬마들 슬금슬금 사라진다


나도 이쯤에서 눈 밝은 철심 하나 심어볼까
불혹 언저리에서 멀어져가는 시력이
힐끗 불멸을 바라본다
철이 들어있다는 것은
어느 한 순간 묵직하게 가라앉는 일
어두웠던 몸이 빛나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철은 살보다 무거워
걸을 때마다 기우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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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나 시인 /
2014년 월간 <시와표현> 등단
시집 / 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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