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보들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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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보들레르

유용선 0 6006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원작: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중에


인생은 종합병원, 환자들 저마다 침대를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어떤 이는 기왕이면 난로 앞에서 신음하였음 하고, 또 어떤 이는 창 옆으로 가면 나을 거야 생각을 하지.

나 지금 있지 않은 곳에 가기만 하면 언제든 행복해질 것만 같아 보이는 탓에 나로선 이 이사의 문제란 나와 내 넋이 서로 끊임없이 논의하는 문제의 하나.

― 말해 보라, 나의 넋이여, 식어 빠진 가련한 넋이여, 리스본에 가서 살면 어떻겠나? 거기는 틀림없이 따뜻할 테고, 너는 도마뱀처럼 다시 기운을 차릴 게다. 그 도시는 물가에 있지. 대리석으로 세워졌고, 주민은 식물을 싫어하여 나무는 모조리 뽑아 버린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네 취향에 딱 맞는 풍경 아닌가! 그 풍경을 이루는 것이라곤 햇빛과 광물, 그리고 그것을 비쳐주는 액체뿐!]

나의 넋은 대답하지 않는다.

― 너는 움직이는 걸 바라보며 휴식하기를 그토록 좋아하니까, 저 복 받은 땅 폴란드에 가서 살지 어떻겠나? 네가 박물관에서 그 그림을 보고 자주 탄성하던 그 나라에 가면, 아마도 너의 마음 퍽 즐거우리라. 로테르담은 어떤가, 돛대의 숲을 좋아하고, 집 아래 매놓은 배들을 좋아하지 않나?

나의 넋은 여전히 말이 없다.

― 바다비아가 더욱 네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군. 더구나 거기에 가면 열대의 아름다움과 섞인 유럽의 정신을 발견할 거야.

한마디도 없다. ㅡ 내 넋은 죽었는가?

― 허면 너는 너의 고민 속에서밖에 즐거울 수 없는 허탈 속에 빠져 있는가? 그렇다면, 죽음과 방불한 나라 쪽으로 도망쳐 가자. ㅡ 필요한 일은 내가 맡아서 하마, 가련한 넋이여! 짐을 꾸려 토르네오로 떠나자. 어쩌면 더욱 멀리라도 가자. 발틱해의 맨 끝까지라도. 할 수 있다면, 인생에서 더욱 더 멀리. 북극에 가서 살자. 거기 태양은 비스듬히 땅을 비추고, 낮과 밤의 느린 교대는 변화를 없애고 허무의 반쪽인 단조로움을 북돋아 준다. 거기서 우리 오래도록 어둠의 미역을 감을 수 있을 것이요, 그 동안,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극광은 때때로 우리에게, 지옥 불꽃의 반사광처럼 그 장밋빛 햇살 다발을 보내 주리라!

마침내 내 넋의 말문이 터지더니만 슬기롭게도 내게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어딘들 상관없어! 다만 그곳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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