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사이버 거리로 가출 - 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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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사이버 거리로 가출 - 김왕노

김혜련 0 2805
마흔 , 사이버 거리로 가출

날마다 나와 통화하지만 놀라지 마라 그는 내가 아니다
응응 그래 그럼 24일 날 대식이네 집에서 만나
통화해도 24 일날 만나는 나는 내가 아니다
분명히 나와 통화하고 약속했지만
약속 장소에 나가 만날 나는 내가 아니다
주민등록번호로 신체적 특징으로 나를 확인해도 맞지만 나는 내가 아니다
감시카메라앞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당당히 빼가는 나는 분명 내가 아니다

내가 출근하는 하는 것을 보고
내 넓은 이마를 보고 가방을 보고 차번호판을 보고 영락없이 나라고 믿지만
볼펜을 습관으로 입에 물며
체육시간에 아이들과 어울려 미친 듯 공차는 나를 보고
분명히 너는 누구야 하지만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벌써 몇 달째 가출중이고
내 가출해 간 거리에서 듣는 떠나온 세상에서 찾아오는 사람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지는 소리 현대시학회에 참석하라는 편지를 받지만
그 때 그 시학회에 참석한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 난청지역 주소불명 지역으로 들어왔으므로
잠깐 본 나지만 나는 내가 아니다

바쁜 월말에 어떤 목마름으로 일손을 멈추고
술한잔 하자는 약속을 해와 너를 만나고
술잔을 나누며 술잔처럼 기울어가던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는 출발점에 와 버린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물살을 헤치고 어두운 건널목을지나고
도로를 무단횡단해 따라오는 맹목적인 저 그림자도 모른다
너도 모른다
사이버 밤이 오면 이슬에 젖고
꿈에서조차 바르르 떨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침이 날 데릴러와 문앞에 서성거려도
곤한 잠탓에 일찍 눈 뜨지만 나는 이 곳을 떠나지 않았다
오늘도 결재난에 사인을 해주는 나지만 분명 나는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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