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앨범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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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앨범 /김상미

유용선 0 4196
시인 앨범  /김상미


 시를 우습게 보는 시인도 싫고, 시가 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시인도 싫고, 취미(장난)삼아 시를 쓴다는 시인도 싫고, 남의 시에 대해 핏대 올리는 시인도 싫고, 발표지면에 따라 시 계급을 매기며 으쓱해하는 시인도 싫다.

 남의 시를 훔쳐와 제것처럼 쓰는 시인도 싫고, 조금씩 마주보고 싶지 않은 시인이 생기는 것도 싫고, 文化林의 나뭇가지 위에서 원숭이처럼 재주 피우는 시인도 싫고, 밥먹듯 약속을 어기는 시인도 싫고, 말끝마다 한숨이 걸려 있는 시인도 싫다.

 성질은 못돼 먹어도 시만 잘 쓰면 된다는 시인도 싫고, 시는 못 쓰는 데 마음씨는 기차게 좋은 시인도 싫고, 학연, 지연을 후광처럼 업고 다니며 나풀대는 시인도 싫고, 앉았다 하면 거짓말만 해대는 시인도 싫고, 독버섯을 그냥 버섯이라고 우기는 시인도 싫고,

 싫어……

 2004년 마지막 달, 시인들만 모이는 송년회장에서
 가장 못난 시인이 되어 시야 침을 뱉든 말든
 술잔만 내리 꺾다 바람 쌩쌩한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싫다, 싫다한 시인들 차례로 게워내고 나니

 니체란 사나이, 내 뒤통수를 탁 치며, 그래서 내가 경고했잖아.
 같은 동류끼리는 미워하지도 말고 사랑하지도 말라고!
 벌써 그 말을 잊은 건 아니겠지? 까르르 웃어 제치더군
 바람 쌩쌩 부는 골목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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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 시 속에 등장하는 시인 유형들 이미 20대에 다 목격했다. 그런데 싫어한다고 비판한다고 해서 김상미 선생이나 내가 그 모습들로부터 열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싫다'는 말은 완벽한 진실일 수도 거짓말일 수도 없는 말이다. 동류를 향한 애증(愛憎)이다. 상당부분 진실일 테니까 역설은 아니다. 사실 내 경우엔 니체 역시 토해내고 싶은 싫다한 시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김상미 선생이 부러울 따름이다. 언제 뵐 일 있으면 게우는 방법이나 여쭈어야지. 나보다 열 살 많은 선생은 나이 더 먹으면 할 수 있게 된다고 웃으며 답할 공산이 크다. 아무튼 눈물 나게 게워내도 끝끝내 남아 있는 모습들만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말아야지! 이 시의 제목은 원래 '시인앨범 3'이었는데, <시집 잡히지 않는 나비>에 있는 '시인앨범 3'은 '도둑맞은 시'라는 부제로 표절 문제를 다룬 다른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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