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의 실제 /정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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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의 실제 /정영자

정해철 1 3057
정영자


시창작의 실제


현대는 자기개성시대이다. 따라서 자기만의 표현형식을 통하여 남과 교류하며 문화적 충격을 공유한다.
이 시대는 대중예술문화로 공간개념이 확대되면서 표현의 다양화 속에 자기만의 메시지 창출이 가능하며, 그것이 감동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글짓기에 왕도는 없다. 간절함, 사랑함, 진실함. 그 적막함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감정의 응축으로 맑고 투명하면서도 분명함이 보여야 한다. 그리움이나 간절함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시의 길을 걸을 수 있으며 문학의 그늘에서 뜨거운 열정을 식힐 수가 있을 것인가.
시인은, 수필가는 뜻과 감정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정서와 운율적 언어를 통하여 인생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기쁨이나 슬픔, 사랑과 같은 감정을 그 긴장된 상태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짧은 진술을 통하여 표현한 단 형의 운율적인 글로써 시는 정보전달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정서적 감동이라는 분위기의 공유와 영혼의 울림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윽하게
빛나는
사람

참으로
만남이네

--정영자, <사람에게> 전문

만남의 감동을 이 말 이외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고요하게, 그러나, 분명히 남다른 맑음과 밝음으로 다가선 사람에 대한 영혼의 전율은 이렇게 밖에 묘사할 수 없었다.
시는 사실의 언급 정보전달에 따르는 언어의 정확성·질서화·논리화를 배척하고 정서의 환기에서 기인되는 애매성·직관성·비논리성을 추구하며 그것은 상상력에 의존한다. 따라서 시는 감정의 환기 및 상상력의 깊이 있는 활용에 그 본질이 있다.

유달리
초록잎
흔들려
사람이 그리운 날,

바다를 만나러
해운대를 돕니다

멀리
푸른 하늘 감도는
해운대에
머뭅니다

--정영자, <사람이 그리운 날> 전문

초록잎이 흔들리는 날에 사람이 그리워 바다를 만나러 해운대를 돌고, 머문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인 설명이 있을 수 없다. 진초록의 잎은 바람이 불면 더 유난히 밝게 빛나고, 그 잎의 흔들림 속에 멀리 있는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 그를 가장 잘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해운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말의 풍성함, 보고싶음의 가득함을 간결하게 해운대를 돌고 머문다는 여운 속에 간절함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는 말의 꼬기가 아니라 말의 풀어짐에 대한 응축된 힘과 유연한 여유를 가진다.
시는 감정의 과잉, 감상의 표출로만 씌어지지 않는다. 시적 감정은 가치 있고 숭고한 방향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심미적 효과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적·도덕적 차원의 비판, 문명비판의 적절한 지성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어지럽고
짜증날 때
그 날의
푸른 하늘,
바람을 마시자

씻고 씻어
다시
새롭다는 것은
젊어지는 것이다

나날이
이 땅에 쌓이는 것은
먼지와
또 가을의 낙엽들,

살고자 하면
사랑할 일이다

다시
봄을 만나기 위하여
싱그러운 잎과도
이별할 일이다

어지럽고 짜증날 때
그 날의
푸른 하늘
바람을 마시자

--정영자, <바람을 마시자> 전문

어느 정도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화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이 논리적이고 지적인 언어로써가 아니라 은유와 상징 등의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먼지"는 혼돈과 죄의 모아짐이며, 새로운 창조인 봄을 위하여 아쉽게 가꾸어 온 현재의 안존적인 싱그러운 잎마저 이별할 수 있어야 된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따분하고 짜증날 때 그 순수 무구한 젊은 날의 푸른 하늘과 바람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순수에의 회복을 말하는 시이다. 이것은 오늘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며 환경문제와 연관된 먼지의 상징성이며, 쓸모 없는 황폐한 찌꺼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는 지적인 부분을 수용하며 비판적 접근을 시도할 수 있으며 이것은 복잡화·다양화·다변화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훌륭한 시는 단일한 감정이나 긍정적 감정만으로 씌어져서는 안 된다. 때로는 적대적일 수도 있는 복합적 감정으로도 구성된다.

버린다
먹고, 마시고, 닦고,

버린다
일회용 반창고, 일회용 주사기
일회용 친구, 일회용 애인

모두들
일회용 소모품

목숨이 우는 날
비가 오고 있다

--정영자, <여자 Ⅷ> 전문

사랑과 미움, 공포와 연민, 즐거움과 슬픔, 고독과 충만 등의 감정이 갈등과 긴장 속에서 하나의 통합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최승자 <일찌기 나는>전문

혹독하리만큼 자아성찰의 비하로 시작되는 최승자의 자기 벗기기는 그의 특성이다. 이와 같은 과감성이 어떻게 보면 애상적 한국정서를 파괴하는 대담한 솔직성에 기인하고 그것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을 스쳐 가는 감정의 순간적 표현 주관성의 우세, 리듬과 비유어의 적극적인 채택, 체험의 압축적, 집중적 표현, 시인과 대상간의 순간적 융합과 감정의 내면화 -- 이 속에서 시는 탄생된다.
시의 언어는 일상적, 관습적 표현을 탈피하여 낯설게 제시되고, 개인적 체험의 순간적인 극화로 이루어진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대

산 모퉁이를 돌면
나뭇잎새 끝자락에
초록으로 와 있는 그대,

아롱아롱
봄볕나린 숲 그늘에도
너울너울
먼저 와 있고

연초록 빛 물빛에는
물방울로 흐르는 그대

노란 밭이랑에
배추꽃으로 피고
풋보리 한 잎에도 뿌리내린 그대

그대는
창 안에 창 밖에

많이도
와 있다

-- 정영자 <물방울로 흐르는 그대> 전문

절대 고독, 절대 사랑은 고여두면 안 된다. 절절한 사랑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된다. 영혼의 전율이라는 공감대를 이루어 독자를 감격하게 한다. 절대 고독, 절대 사랑을 푸는 방법은 문인의 말이다. 이 때 날카로운 감수성이 없을 때 표현의 동기는 상실된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먼저 감수성을 키우기를 선행하여야 한다. 놀라운 세상의 변화, 계절의 변화와 기막히는 새잎초록의 눈부심과 초록숲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 그리고 잎사귀의 흔들림, 잔디를 밟고 가는 앞사람의 뒷모습, 웃으며 담소하는 옆얼굴의 다정함, 우리는 이러한 행복과 이 평화를 사진처럼 표현할 수 있어야 된다. 언어를 통한 생명을 불어넣은 살아있는 표현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에서 출발하여 민족이 되고 우리 모두의 것으로 승화될 때, 시는 개인적 도락을 넘는 독자의 감동에 깊이 관여한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시집에 나오는 88편의 시는 님에게 바치는 연작시이다. 그러나 개인은 물론이지만 민족에게로 확대되고 종교적 절대자에게까지 심화됨으로 그의 시는80년 한국현대시사상최고의 시로 남는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않았다
……
빛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위의 서정주의 <자화상>은 애비는 종이었다는 조국이 일제에 예속 당한 시대의 개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적인 문제는 험난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증언함으로써 개인과 민족의 시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언제나 언어의 경제적 표현을 겨냥한다. 소설의 본질은 사실성에 있다면 시의 본질은 상징성에 있다. 어떤 정황을 산문은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지만 시는 그 감흥을 명쾌하게 요약하고 응축한다. 따라서 시는 필요한 최소의 언어에 만족한다.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 놓고
내 소녀
어디 갔느뇨

오일도의 시에서 최소의 언어가 가지는 생동감, 역동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늘같은 푸르름
강물같은 가득함

--정영자 <친구에게 9> 전문

시의 역동성은 언어의 경제성에서 얻어진다. 생략과 암시를 적절히 원용해야 한다.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시적 기교는 필요하다. 산문에서 가질 수 없는 언어의 경제성에서 가지는 세련된 효과는 상당한 수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는 나이로 쓰고 마음으로 읽는다.
시에도 사상은 필요하다. 지나친 감정의 표출은 저급한 문학을 이룰 확률이 높다. 사상의 정서화를 겨냥해야 한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

-- 신경림의 <목계장터>에서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누리라는 얘기이나 하늘·구름·땅·바람의 자연우주로 확산되는 정서화된 분위기에서 자유를 구가하는 방법은 유연하다. 마찬가지로 <껍데기는 가라>는 사상의 정서화보다는 표어적 구호의 선명함으로 그 강렬성을 돋보이게 한다.
시는 객관적·과학적인 논리로는 증명하기 어려운 일련의 진술들로 이루어지며 그 진술들이 어울려 구축하는 독특한 형식과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밤 바다 휘황한 불빛을 보며
오랜만에
아들과 단 둘이 앉아
애플쿨러를 마신다

꼭 꼭
마음 닫아 걸어 공부로 시간 보낸
아이,

혼자서 가을설악을 만나고 왔다고 한다

아들이 가져 온
시월의 붉게 타는 단풍을 만나며
세월 속에
잔잔히 피어 오르는
어머니를 부른다

살아 가면서
때때로 깨달아가는
이승의 감사로움,

바위를 씻기는 바닷물에
눈빛 던지고
레몬 레이드 한 잔에
싱그러운 젊음이 녹아

지구 끝
한 자리에
아들과 더불어
가을이 익고 있다

--정영자 <가을 설악을 만나고 온 아이> 전문

자기표현의 진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성"이다. 성실성은 시인 개인의 비전이나 마음의 상태에 대한 "진실성"이다. 모방론에서는 대상의 진실성이 가치기준이라면 표현론에서는 예술가 자신의 진실성이 그 기준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순수한 표현이다.
표현은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하면 된다.

나무는 태어난 자리에서, 한평생을 하늘만 바라보며 자라 오릅니다.

나무는 곁의 나무들을 보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늘만 보며 솟아오릅니다.

한치, 한치, 하늘이 주시는 치수대로
무리함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나무는 다른 나무에 의지하는 일이
없이
봄, 여름, 가을없이
겨울에도 숨어서
한평생을 하늘만 보면서 스스로를 솟아오릅니다.
― 조병화 <나무>전문

정직하게 살아가는, 나무의 진솔한 부분을 묘사한 시이다.
시는 외롭지만 즐거움을 준다. 괴테는 "위대한 작품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고 우리를 변화시킬 뿐이다"라고 하여 보다 성숙한 자아, 보다 한 단계 자기를 성찰하는 여유와 공간을 가진다.
왜 시를 써야 하는가.
자기 확충, 새로운 현실 창조와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내일의 비전을 위하여 글은 씌어진다.
시를 읽고 시를 사는 삶은 시인의 생활이다. 시인의 생활이야말로 시 창작의 지름길이다.

1 Comments
정석영 2017.05.17 16:59  
정영자 님의 시 '사람이 그리운 날' 추천시 창의 '한 화음으로 이어가는 한국서정시순례'로 모셔갑니다. 정석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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