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에 관하여 /유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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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에 관하여 /유용선

유용선 0 1917
위선은 마치 조금만 눈을 순하게 떠도 알아채기 힘들만큼 얇은 막과도 같다.
따라서 위선의 막을 두르고 있는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또는 그녀는 한껏 선한 웃음으로 상대를 끌어들이지만 막상 상대의 애정을 받기 시작한 뒤부터는 철저히 상대를 이용한다.
그 또는 그녀는 상대의 고충을 이해한다고 말은 하지만 결코 상대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그 또는 그녀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숱한 언어를 남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하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는 사용할 줄 모른다.
그래서 그 또는 그녀에겐 항상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생겨난다.
어리숙한 사람은 그 또는 그녀의 말에 힘을 얻고 점점 그렇게 이룬 관계 속에서 시들어간다.
위선은 난폭해 보이진 않지만 난폭함보다 커다란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며 융통성이 있어 보이지만 본질은 매우 완고하다.
이러한 모순된 속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위선을 쉽게 분별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 또는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를 독려하지만 상대가 떠나려는 태도를 보이면 제빨리 자신의 기득권을 이용해 계산한다.
위선은 스스로 책임지기보다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들며 언제나 자신을 옳은 사람으로 평가한다.
2,000여년전 예수를 죽게 만든 종교 지도자들은 위선의 좋은 예이다.
오늘날 세계인이 보는 TV 앞에 궁색한 구실을 늘어놓는 전쟁 수행자는 우리 눈앞의 위선자이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그 외면의 구실을 능숙하게 찾아 오히려 힘들고 지친 사람의 무능을 탓하는 지휘자 또한 위선자이다.
그 또는 그녀의 영혼을 덮고 있는 얇은 막은 속이기 위한 얇음일 뿐 실상은 매우 질긴 막이다.
위선은 그렇게 능숙한 속임수를 그 본질 속에 지니고 있다.
위선은 결코 어떤 상대이든 사랑할 줄 모르고 자기 자신조차 이기심으로 대할 뿐 사랑할 줄 모른다.
위선의 끝은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자신은 그래도 옳았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대통령... 직원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장... 학생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선생님... 자녀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부모....
인간은 누구나 하루에도 여러 차례 잘못을 저지르는 법인데 위선자들은 자신들은 예외인 줄 안다.
그렇게 혐오스러운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위선의 얇지만 질긴 막이 영혼 전체를 덮기 전에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아야 한다.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화해할 상대와 화해하라는 말은 위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반성임을 알려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까닭 모르게 모두에게 자꾸만 미안하다.
전쟁이 벌어지고 전쟁의 위험이 도처에 있다.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곳에 살면서 저 먼 곳에서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며 자꾸만 미안해진다.
자꾸만 미안해지고 자꾸만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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