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의 비행청소년 /유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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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의 비행청소년 /유용선

유용선 0 1921
명지대 앞에 살던 시절에 제 사는 집 바로 앞에 작은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해저물녘이면 고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녀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곤 하였습니다.
명색이 선생님이니 "이 놈들!"하고 혼을 내주어야 하는데 어쩐지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녀석들을 자극했다가 볼썽 사나운 일을 당할까 두렵기도 했고, 또 하나는 어쩐지 자꾸 녀석들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무엇이 가여웠냐구요?
이런 생각이 들어서지요.
'어려서부터 학원이다 학습지다 시달리느라 놀이터에서 제대로 늦도록 놀아보지도 못하고 키가 훌쩍 커버린 저 아이들....
어쩌면 저 아이들이 일탈의 장소로 놀이터를 택하는 데에는 어려서부터 쌓인 반항심이 저렇게 표현되는 것은 아닐까?'
심리학자들이나 입증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저로선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어른은 평생 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참 자주 하며 삽니다.
늦된 사람이라 나이 서른이 넘어갈 때부터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이제 어른이라는 것이 꼭 나이를 많이 먹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이 자라나 남을 해할 줄 아는 마음이 되어버린 사람들!
어쩌면 누군가 이 비정한 시대에 상처를 아물리지 못하고 끝끝내 어른이 되지 못하여 피터팬에 머물고 말았다면?
그가 그렇게 된 책임은 그 자신에게만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전혀 무관한 듯 보이는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있는 것일까?
늦은 밤 놀이터의 작은 반항아들을 내가 감히 비행 청소년이라 함부로 단정할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밤늦은 배회가 어디 놀이터 뿐이겠습니까마는
나는 그저 밤마다 놀이터의 녀석들이 이제 그만 어서 집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으면 하고 마음으로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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