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업(詩業) / 박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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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업(詩業) / 박얼서

박얼서 0 196
시업(詩業) / 박얼서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는 “시를 짓는 일이야말로 우리 가문의 일이다(詩是吾家事).”라면서 시 쓰기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가업이라고 강조한다. 시업(詩業)이 마치 자기네 가문의 어떤 상징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채수영 시인도 이를 인용하면서 “시 쓰기는 내게 주어진 일상이다(詩是吾日常).”라는 논리로 시업에 슬그머니 발길을 얹는다. 

‘시란 도대체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며 나도 가끔씩 자문해 보는 편이다. 그렇지만 나는, 두보처럼 가업으로 이을 만큼 뛰어난 능문(能文)도 못되고, 채수영처럼 일상으로 여길 만큼의 그 어떤 책임감이나 자부심까지는 아니었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저 꾸준했을 뿐이다. 새벽을 통해 시업을 근근이 이어 왔을 뿐이다. 

이를 꼭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시란 나에게 새벽이다(詩是吾平旦).”라고 일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벽은 나를 번쩍 일으켜 세웠고, 수렁에 빠진 채 오랫동안 허우적대던 내 시업(詩業)의 불씨를 되살려 준 인연도 바로 이 새벽이었다. 새벽은 그렇게 몽매한 나를 조건 없이 받아 줬고, 나는 새벽의 품에 덥석 안길 수 있었다. 

새벽은 나에게 시작(詩作)의 산실이었으며, 매일매일 새로운 의욕으로 채워 주었고, 그렇게 채워진 충만한 하루를 선점하고 이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창작방 같은 것이었기에, 내게 있어 1시간의 새벽은 다른 10시간을 능가하는, 아니 그 이상의 하루를 대신할 만큼 신비의 마법이 작용했다. 

새벽은 늘 차분하면서도 활기차다. 새벽은 개화를 앞둔 꽃망울처럼 두근두근 여명을 앞세워 소리 없이 접근한다. 은은한 향취로, 청아한 이슬방울로 정신을 맑히며 접근한다. 물안개처럼, 명상처럼, 부지런한 새들의 가벼운 날갯짓처럼, 건강한 맥박으로, 짙푸른 침묵으로, 새벽은 늘 그렇게 다가선다. 

새벽은 침잠의 공간이다. 세상을 이끄는 선견지명이다. 새벽은 하루를 여는 두뇌로서 생각이 머무는 곳마다 깊은 철학들이 숨 쉬는 교실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새벽을 배운다. 하지만 새벽의 판단력은 냉철하다. 나처럼 새벽을 적극 파고드는 사람만을 환영한다는 점이다. 때 묻지 않은 시간의 미립자로서 늘 신비한 뭔가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첫새벽을 맞을 때마다 이는 하늘이 내린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행복감에 항상 머리 숙여 감사하는 편이다. 그런 새벽이 내 시업(詩業)의 원류가 된 지도 꽤 오래전이다. 새벽이야말로 밤새껏 휴면에 들었던 수많은 생각들이 해맑은 시상(詩想)들로 꿈틀거리는 영혼의 자궁이기도 하다. 시작(詩作)의 용광로인 셈이다. 

시인, 누군가에겐 참 낭만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밤을 꼬박 지새우고도 단 한 줄을 이뤄 내지 못했을 때, 그나마도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던져질 때의 패배감이란 시인만이 느낄 수 있는 자괴감일 테다. 한때는 시업이야말로 내 전생의 죄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놓고 밤새껏 고민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좀 더 크게 생각해 보니 그건 차라리 특권일 수도 있겠다 싶어 지금은 자부심으로 키우는 편이다. 

무에서 유를 찾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일 텐가! 그만한 고통도 없이 어찌 감히 시를 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 줄의 시를 놓고 밤새껏 씨름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 그런 의욕들이야말로 나에겐 분명 행운이면서 창의력인 셈이다. 천착하면 할수록, 치열하면 할수록, 그 긴장감은 점점 더 팽팽해져 기상천외하지 않겠는가. 

갑작스레 ‘한 줄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일화가 생각난다. 거액을 기부하게 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까짓 1,000억 원쯤이야, 그 사람(白石)이 쓴 ‘한 줄의 시’만도 못한걸.”이라는 대답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백석의 영원한 연인 자야였다. 

자야는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던 백석과 그의 시들을 사랑했다. 자신의 한평생을 백석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으로 살았던 자야가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불교 재단에 기부하면서 남겼던 말이다. ‘한 줄의 시만도 못한걸.’ 이런 단 한 줄의 시구(詩句)에 목숨 거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시업(詩業)을 이끄는 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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