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방에서 띄우는 편지 - 김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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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지방에서 띄우는 편지 - 김영승

가을 0 2491
지방에서 띄우는 편지  

조선일보-<지방에서 띄우는 편지>-2002년 3월 7일

관련특집
- 지방에서 띄우는 편지

 
인천 하면 사람들은 자유공원이나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월미도나 연안부두의 횟집이나 카페, 그리고 옐로 하우스나 ‘인천의 성냥공장’ 정도를 떠올린다. 북경 하면 2004년 베이징 올림픽이나 북경 오리구이를 떠올리지 북경원인이나 북경조약 또는 펄 벅의 「북경에서 온 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드물 듯이, 제물포조약이나 인천상륙작전, 가령 김소월이 시 「밤」에서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바닷바람이 춥기만 합니다’운운하며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 애절히 노래한 그 ‘이곳은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을 떠올리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자꾸 드물어지는 듯한데, 놀라웁(?)게도 내 자신조차도 그렇다. 이 상전벽해로 변해버린 인천을 놓고 인천 하면 나한테도 무슨 파천황으로 떠오르는 비범한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별로 없고, 오직 있다면 그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그 ‘바다’ 뿐이다.
그런데도 인천에는 정작 바다가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인겸이(내 아들. 초등학교 6학년)한테 물어봐라. 인천에 바다가 있나 없나. 미· 영 ·독 ·청 ·일…그리고 프랑스와 러시아의 조계(租界)가 있었던 인천, 무모하고 경솔한 인물로도 평가를 받는, 그러면서도 한 때는 미국의 영웅이었던 그 머카서―MacArthur의 원래 발음― 동상이 서 있는 그 자유공원에만 올라가 봐도 인천의 근· 현대사가 주마등처럼, 파노라마처럼 일모(一眸)에 별견(瞥見)된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현덕(玄德)의 ‘남생이’, 그 가난하고 아름다운 노마의 엄마는 아직도 그 부둣가에서 들병이 장수를 하며 뭇 사내들한테 헤픈 웃음을 팔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자유공원에서 내려다보면, 보면 볼수록 인천엔 역시 바다는 없는 것 같다.
바다를 직접 만지고 느끼고 망둥이 낚시를 하며 그 바다에 몸을 담그고 소위 바다와 스킨 십을 할 수 있는 그런 바다는 언제나 그림의 떡이고, 그래서 바다는 언제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린 것이 인천의 현실이다. 모든 해안은 거의 철책선으로 삼엄히 차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있는 바다마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즉, 개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누가 니 어머니나, 마누라나, 누이나, 딸이나, 애인의 거기를 메꾸면 너는 좋겠냐?”
언젠가 술을 마시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려렸던 적이 있다. 2000년전 비류가 도읍한 인천의 주산 문학산을 깎아서 그 토사로 열심히 송도 앞바다 일대 그 개펄을 메꾸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개펄은 여자의 거기처럼 뭔가를 정화하지 않는가. 새 발자국을 보고 중국 황제(黃帝)의 사신 창힐(蒼 )은 문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개펄에 찍힌 새발자국, 게발자국, 그리고 그 새발자국, 게발자국 옆에 반짝반짝 별빛처럼 찍혔던 그 조개 잡는 아낙네들의 그 고운 맨발자국 등은 도대체 얼마나 화엄한 팔만대장경인가.
서해안은 세계 3대 개펄, 그리고 내가 사는 인천의 연수구 그 동춘동의 옛이름은, 썰물 때면 5㎞ 이상의 개펄이 드러나 그야말로 ‘가도가도 끝이 없다’라는 뜻의 ‘먼우금’이다. 나는 현재, 그 사라져가는 아니 곧 사라질 그 개펄을 철책선 너머로 바라보며 ‘아아, 먼우금…’이라는 연작시와 ‘우렁찬 파도소리 바위를 뚫네’라는 권시(卷詩·두루마리詩)를 쓰고 있다. 아아, 나는 그 바다와 함께 인천에서, 그렇게 바위를 뚫는 우렁찬 파도소리처럼 부활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은 경칩(驚蟄), 서해의 일몰, 그 낙조가 그저 은총 같고, 그렇게 속삭이는 듯한 지극히 비현실(?)적인, 환상적인 봄밤이다.

( 金榮承/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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