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게서 배움 1. /유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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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게서 배움 1. /유용선

유용선 0 1849
  1. 중심잡기

  넘어지는 방향으로 손잡이를 틀라고? 그런 말도 되지 않는 방법이라야만 땅에 매다 꽂히지 않을 수 있었다. 무작정 버티는 것보다 슬그머니 따라서 기울어주어야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원리를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엉뚱하게도 나는 그 원리를 마음에 적용하여 슬프면 슬픈 그대로 마음껏 슬퍼하며 마음의 아픔을 아물게 할 줄 알게 되었는데 이는 순전히 자전거를 탈 줄 아는 덕분이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날, 열 살짜리 개구쟁이는 제 무릎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힘껏 페달을 밟으며 ‘오냐, 그래’ 하는 심정으로 넘어지는 쪽으로 손잡이를 틀었다. ‘어, 어, 정말 앞으로 간다. 똑바로 간다.’ 화곡동 696번지의 어느 작은 상점 쓰레기통이 내 첫 번째 중심잡기의 희생제물이었다. 최초로 중심을 잡는 일에 성공했다고 해서 동시에 그보다 높은 수준의 중심잡기인 부드럽게 멈추는 것까지 동시에 깨달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드럽게 시작하고 느긋하게 멈추는 법! 페달을 밟으면 미처 중심을 잡기도 전에 자전거의 두 바퀴는 멀찌감치 나아갔다. 작은 원으로 큰 원을 돌리는,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일으키는 이 신기한 현상이 원의 고유한 특성과 체인의 역할에서 비롯되는 동력의 증폭임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작은 곡선 두개가 합심하여 구르기 시작하면 눈앞에는 아주 유쾌한 직선의 길이 열렸다. 그런데 그 길을 굽게 만들거나 그치게 하려면 한참 달릴 때와는 딴판으로 아주 부드럽게 속도를 늦추어야 했다. 도대체 나란 사람은 어려서나 다 자란 지금이나 넘어지고 깨지기 전에 미리 눈치껏 파악하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다. 갑작스레 달리려다가 제 자리에서 공전하며 넘어지기도 했고, 갑자기 멈추려다가 허공에 낫질하듯이 꼬꾸라져 땅에 이마를 박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시작이나 중단이 냉엄한 결과를 빚는다는 교훈을 나는 아직도 생활의 모든 측면에 적용할 줄 모른다. 관념으로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자전거를 탈 때 가장 지혜로운 지도 모르겠다. 자전거에서 내리면 마치 방금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추었다가 이내 곧 잊어버리고 마는 어리석고 답답한 일상을 반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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