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눈 속에 덮인 세상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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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눈 속에 덮인 세상을 몰랐다

폭설

어릴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났다.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추운 줄도 모르고 눈만 오면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면서 강아지처럼 신나게 뛰어놀았다. 눈 속에 덮인 세상을 전혀 몰랐다.

폭설은 대부분 밤이나 새벽녘 많이 내리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순진한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창밖이 하얀 것을 보고 마당에 나와 세상이 하얗게 덮인 것을 보고는 세상이 마냥 아름다운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그 눈으로 인해 새벽에 일을 나가신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지, 눈길에 상을 고치러 다니실 어머니는 또 얼마나 힘들지, 폭설로 신음할 사람들이 있고, 또 누군가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눈 덮인 세상만 보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제 내가 어른이 되니 그 눈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 보인다. 부모님의 희생뿐 아니라 누나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학교를 다녔고 나중엔 동생들의 희생으로 내가 집에 신경 쓰지 않고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그 아픔들을 알아도 보살펴 줄 수 없는 세월에 차라리 눈이라도 내려 모두 덮어주면 좋으련만 이제는 눈도 잘 내리지 않고, 간혹 날리는 눈발을 담담히 지켜보면 이제는 손발보다 눈이 먼저 시리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시려온다.
1 Comments
상곡 2022.01.19 06:20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