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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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우는 것이다

[봄의 태동]

봄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저 깊은 산속, 눈이 녹으면서 겨울을 이겨낸 야생화가 고개를 내밀며 화사하게 웃어야 봄이 오는 것일까? 저 깊은 계곡, 얼음이 녹아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얼음 깨지는 소리에 놀라 튀어 나와 폴짝 폴짝 뛰어야 봄이 오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의 가슴에 봄바람이 불어야 봄이 오는 것일까?

어느 해 겨울 아침, 출근을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 뒤 화단에 있던 국화꽃과 비올라꽃이 말라비틀어지자 흉물스러웠는지, 어느 날 다 뽑혀 하나도 안보이고 회백색의 마사토가 뒤덮여 있다. 그동안 버스 대기 시간을 화사하게 장식해 주던 꽃들인데 아쉬워 화분을 둘러보는데 뭔가 삐죽 튀어 나온 것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잡초 같은 풀들이었는데, 마치 겨울바람 부는 하얀 사막에 난데없는 오아시스 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꽃을 뽑고 흙을 뒤엎어 마사토를 덮을 때는 아마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저 생명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와서 이 차가운 마사토를 점령하였는지, 마치 동토의 사막을 갉아먹는 미지의 생명체처럼 경이로웠다.

추운 겨울날, 우리는 봄이 아주 멀리 있고 막연히 멀리서 오고 있겠지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봄은 저 멀리 산이나 계곡에서 바람을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도심 속 차가운 흙속이나, 황폐한 우리들 마음속에서 겨울잠을 자다 때가 되면 깨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우면 되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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