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게서 배움 2. /유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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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게서 배움 2. /유용선

유용선 0 1873
   2. 펑크

  설마 내 것이? 다른 친구들이 제 자전거가 펑크가 나서 울상을 지을 때 나는 결코 그 녀석들을 낯빛으로든 속마음으로든 동정하거나 하지 않았다. 타이어 펑크는 아무래도 나와는 먼 남의 일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타던 자전거는 점포에서 수시로 손질을 해서 임대를 하는 것으로 한 차례도 펑크가 나는 일이 없었다. 화곡동부터 자전거를 몰아 김포공항까지 이른바 하이킹이라는 것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그와 같이 먼 여행은 하여도 길이 험한 곳은 가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었기 때문에 아껴 쓰는 맘이 있어서였는지 펑크는 더더욱 남의 일이었다. 그렇다. 펑크는 제 것을 가진 사람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고이지 빌려 쓰는 사람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린 사람들이란 판단이 미숙하기 마련이어서 제 것을 소중히 여기려들지 않고 소홀히 하기가 일쑤인 법이다. 자기 것에 대한 무례함. 내가 최초로 겪은 펑크가 내 소유의 자전거를 운전하면서 생긴 일이었음을 기억할 때 무례함은 대체로 남의 것이나 멀리 있는 사람보다 내 것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더욱 범하기 쉬운 것이다.
  살아가며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 가운데 무례함을 참는 일이 들어있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성품 속에 진지함을 미덕으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흔히 무례함은 상대보다 나이를 더 먹었거나 직책이 높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상대에게 적용하는 것이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견디기 힘들다. 또한 이성(異姓) 간의 무례는 나이나 직책과 무관한 이질감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그 가운데 특히 배우자가 범하는 무례는 가장 견디기 힘들다. 가깝고 편한 사이일수록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굳이 심리학자가 아니라도 인생의 임상실험을 통해 누구나 다 깨달아 알게 되는 진리이다.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이 내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내 부모가, 내 자식이, 내 남편 혹은 아내가, 내 가까운 벗이……. 펑크! 좋은 관계가 나빠지기 전에 미리 주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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